아무튼 책방. (사진=요행)
아무튼 책방. (사진=요행)

# 별일 없이 산다

‘싸구려 커피’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장기하와 얼굴들’은 정규 1집 타이틀곡으로 ‘별일 없이 산다’를 들고 나왔다. 이 노래는 데뷔곡을 훨씬 뛰어넘는 인기를 끌었고 ‘장기하와 얼굴들’은 독보적인 한국형 포크록 밴드로 우뚝 섰다. 

'아무튼 책방'을 방문하고 난 후 귓가에  ‘별일 없이 산다’가 맴돌았다. 이 노래에서는 ‘이렇다 할 고민’이 없고, ‘별다른 걱정’ 없어 그것이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고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지 못하게 하는 말이 바로, ‘별일 없이 산다’다. 처음엔 단순히 나를 가볍게 여기는 상대를 따돌리는 유쾌한 가사로 생각했으나 계속 듣다 보면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아무튼’이란 단어는 ‘가벼움’을 연상시키는데 이 책방 문을 닫고 나왔을 때 가슴에 여러 감정, 생각이 내려앉았다. 이 노래와 이 책방은 그래서 닮았다. 겉은 친숙하고 내면은 상당히 깊다.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은 꽤 무겁다. 위의 노래처럼 ‘별일 없지?’라는 말이 시기와 질투에 기반한 말일 수 있겠으나 대부분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 일종의 안부 인사인데 저 질문에 대한 대다수의 답은 ‘응. 별일 없어.’이다. 정말 별일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히 다양한 마음들이 ‘별일 없음’에 숨겨져 있다. 도대체 내 마음의 안위 외에 세상에 그 무엇이 그렇게도 중요하기에 우리는 그토록 ‘별일이 없고 괜찮은’ 삶을 살아야 할까.

그림책 코너. (사진=요행)
그림책 코너. (사진=요행)

아무튼 책방은 ‘별일 없음’의 이면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그 마음이 잘 정돈되어 있는지, 상처는 잘 아물었는지, 곪은 곳은 없는지를 함께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고 처방까지 받을 수 있다. 책 한 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이곳의 정체성에 있다.

사람, 장소, 환대, 연대를 고민하며 작지만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동네책방을 지향합니다.

책방지기를 만난 날 강영선 책방지기가 나에게 건넨 종이 한 장에 적힌 ‘아무튼 책방’의 소개글이다. 사람을 환대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세상에 환대받기를 지지하고 서로 연대하며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곳. 이를테면, ‘당신 정말 별일 없나요?’와 같은 질문 말이다.

# 아무튼 책방 문을 열자! 

올해로 50대 중반을 걷고 있는 책방지기는 30대에는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활약했다. 40대에는 협동조합에서 일을 하며 이사를 역임하고 51살에 퇴임했다. 50대를 맞으니 자신을 속박했던 직장인,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등의 역할에서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상태가 되었다. 자신을 위한 제2의 인생을 드디어 설계하게 됐는데 평소 책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습관이 있던지라 자연스레 책방을 여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2019년 7월 말에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아라동에 둥지를 틀었다.

강영선 아무튼 책방지기. (사진=아무튼책방 제공)
강영선 아무튼 책방지기. (사진=아무튼책방 제공)

 

 

책방지기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이렇게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를 참 좋아하는데 이 시리즈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다. 이 단어가 귀에 들어와 있던 차에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 보니 책방 문을 열 날이 자꾸 뒤로 미뤄져서

아무튼 책방 문을 먼저 열자!

라는 생각에 책방 이름이 ‘아무튼’이 됐단다. 그런데 이렇게 입에 착 감기는 말이라니! 

‘아무튼’을 내세운 큐레이션이 참 인상적이다. 예술과 술을 좋아하는 책방지기의 사심이 담긴 ‘아무튼 주책(술과 책)’, 여행에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아무튼 여행’, 처방전과 함께 책을 추천해주는 ‘아무튼 책방 추천’, 다양한 책을 볼 수 있게 도와주면서 선물이 되는 ‘비밀의 책’ 코너와 명언, 그림책 코너 등. 책이 낯설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쉽게 정하기 어려울 때 참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마음의 경계가 엷어지는 공간이다.

아무튼 주책 코너. (사진=요행)
아무튼 주책 코너. (사진=요행)

큐레이션 코너를 나눠 여러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책방지기의 취향이 확고하다. 여성, 노동자, 노인, 장애인 등 소위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이들의 인권에 관심이 높다. 책을 통해서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모임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그녀 역시 모임을 통해 자신을 더 알아가고 있다고.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이고,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존재하지만 지워지고 밀려나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책을, 자기 삶을 시대 안에서 읽고 사유하는 책들, 여성의 언어로 자기 삶을 해석하는 책들, 인간 중심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위한 책들, 건강하지 못함이 자기 관리 실패로, 늙어감이 쓸모 없음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아픔이 길이 되고 관계의 돌봄과 나이 듦을 고민하는 책들이 사랑받는다.”

역시 그녀가 나에게 준 종이 한 장에 함께 실려 있던 글이다. 추천의 책에 관한 질문에 내놓은 그녀의 답인데 주변에 너무 흔하지만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주의 있게 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관심사다. 함께 하는 삶, 그 삶은 함께 행복하고 즐거우면 좋겠다는 의지인데 다른 말로 다시 정리하자면 존중과 배려다.

#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곳의 책방지기는 ‘연대’를 좋아한다. 낭독모임과 책읽기, 필사하기, 글쓰기의 모임을 아끼는데 이런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이런 공간과 시간에 얼마나 목 말라고 하고 있었는지 체험했다고 했다.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거나 필사하는 모임의 마무리는 글쓰기인데 분명 서로가 같은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정, 생각을 정리한 내용은 저마다 달랐다.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게 되니 결국 읽고 난 후 할 수 있는 말은 내 삶의 자취들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책방의 다양한 모임들. (사진=요행)
아무튼 책방의 다양한 모임들. (사진=요행)

책방지기는 의외로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누군가의 언어가 아니라 나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나의 언어라는 것은 내가 살아 온 인생, 내가 걸어 온 길, 내 가슴에 오래전부터 품어 왔던 생각들이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이기가 두려워 글쓰기를 망설이는 것이지 계기만 있다면 누구나 나의 언어를 꺼낼 수 있다. 이곳에서 그런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모두가 타인이었다는 점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있으면 위축이 되지만 또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있어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익숙하고 친숙한 환경이 가끔 불편하게 다가오고, 위태로움까지 안길 때. 그럴 때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타인을 통해 위로받는 일이 왕왕 있다. 책의 저자 역시 타인이고 아무튼 책방의 모임으로 만나는 이들 역시 타인이다. 이곳의 모임은 대부분 서로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소수정예로 이뤄진다.

자신의 글을 쓰고 와서 읽는 날이면 글을 쓴 사람이 울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우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자만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을 풀어내니 해소의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닐까. 그 울음으로 짧게는 40년 길게는 60년의 지난날을 위로받는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내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나를 나로서 만족하면 주변의 나쁜 일은 없다. 나는 이미 완전하고 단단하므로 그런 나를 휘청이게 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나에게만 주어지므로.  

아무튼책방의 비밀의 책. (사진=요행)
아무튼책방의 비밀의 책. (사진=요행)

책방지기는 모든 것의 완성은 글쓰기라고 단언했다.

“저는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봐요. 내가 잘 살기 위해서요. 나를 더 들여다보고 주변도 보게 되거든요.”

2020년에 같이 글쓰기 모임을 했던 사람들과 책 한 권을 펴냈다. 딱 열권만 찍었는데 글쓰기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만 나눠 갖기로 약속했다. 이 책에는 각 지은이들의 너무나 속 깊은 이야기, 너무나 은밀한 이야기들이 담겼다고 한다. 이 모임에 참여한 이들이 여성이란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는지 내용은 전반적으로 한국 여성의 삶이 담기게 됐는데 폭언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경험, 최소한의 자유의지 외에는 속박됐던 삶을 살았던 경험, 욕망과 욕구를 무시 받고 외면받았던 경험 그런 경험들로 인해 힘들고 아픈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숱한 고백들. 그 일들을 쓰면서 다듬고 또 다듬어 정제된 글로 만들어 가는 그 과정속에 모두는 치유를 경험했다.

아, 이런 것도 이야기해도 되는 거구나. 이런 것까지 다 말해도 되는 거구나. 아, 나만 겪은 것이 아니었구나. 아,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언어를 쟁취한 그들의 도전에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가슴 속 응어리를 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면 그런데 그런 당신들의 거주지가 제주라면. 당신은 그 일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아무튼 책방이다.(2부에서 이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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