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뽕나무 한아름드리 거목. (사진=송기남)
야생뽕나무 한아름드리 거목. (사진=송기남)

뽕나무의 성분이나 뽕나무를 매개로 하여 재생산되는 쓰임들은 매우 다양하다. 지난번에 올렸던 칼럼에서도 뽕나무의 다양한 효능에 대해 언급했듯이 뽕나무는 우리 몸에 질병을 다스리는 약재로서도 큰 도움을 주지만 뽕나무를 매개로 하여 재탄생하는 2차 생산물과 3차 생산물까지도 무궁무진한 우리의 자원식물이다.

뽕나무의 2차 생산물이라 하면 늙은 뽕나무에서는 균사체가 발생하여 상황버섯을 얻을 수 있다. 상황버섯은 뽕나무에서 나는 노랑버섯이라 하여 상황버섯이다. 항암치료에 쓰이는 약용버섯으로 인기가 높다.

뽕잎에는 곤충에게 변태성 호르몬이 들어 있어서 누에 애벌레가 뽕잎을 일정정도 먹으면 잠을 자게 된다. 이때까지 누에가 뽕잎을 먹으면서 싸놓은 똥을 햇볕에 말린 것을 ‘잠사’라 하여 물로 끓여 우려낸 후 찌꺼기를 버리고 당뇨병에 약으로 마신다. 잠사 5~10g을 물 4홉에 은근한불로 끓여 물이 절반정도가 되면 하루 2~ 3회에 나누어 마신다.

누에가 1차 탈바꿈을 하여 잠에서 깨어나면 더 왕성하게 뽕잎을 먹어댄다. 몸집이 커진 만큼 먹기 때문이다. 뽕잎 먹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릴 정도로 부지런히 먹어댄다. 몸길이가 약 2cm 정도 자라면 자기 몸을 둘러싸는 고치집을 짓는다.

이렇게 뽕잎을 먹은 누에가 균사체에 감염되어 죽으면 동충하초라는 누에 버섯이 발생한다. 동충하초는 노화방지를 돕는 최고의 명약이다. 동충하초는 매미나 사슴벌레, 장수풍뎅이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뽕잎을 먹은 누에 동충하초에 비길 바가 못 된다. 누에고치에서 애벌레 번데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삶아서 먹으면 맛도 고소하고 최고의 단백질 영양식이다.

옛날에는 분유나 우유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 영양실조에 걸려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볼록 튀어나온 아이들에게 번데기 삶은 것을 며칠만 먹여도 영양상태가 확 달라졌다.

야생뽕나무 한아름드리 거목. (사진=송기남)
야생뽕나무 한아름드리 거목. (사진=송기남)

옛날 내가 나고 자랐던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중문리 1625번지 못동산 위쪽 지금 한국전력 변전소가 들어선 그 자리에는 집 둘레에 여러 그루의 뽕나무가 있었다. 내가 8살이 되던 1968년까지 어머니는 조그맣게 양잠을 하셨고 미싱질을 하셨다.

누에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누에가 1차 잠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유채를 털어낸 마른 유채대를 거실 가득히 세웠다. 뽕잎을 잔뜩 먹어 통통 살 오른 누에들은 시렁상자에서 기어 나와 유채나무마다 올라가서 고치집을 지었다. 그렇게 며칠을 뒀다가 큰 말치솥에 물끓이는 날은 동네 할머니들도 와서 거들었다. 누에고치를 삶아 실을 뽑는 날이다.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실을 감으시고 할머니들은 고치실을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는 보조역할을 하셨다. 할머니들은 중간 중간에 먹기에 적당한 번데기들을 사발에다가 골라주셨다. 번데기는 그렇게 맛이 있었고 국물조차도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그렇게 비단실을 뽑았다. 이 비단실을 명주실이라고도 하는데 어머니는 ‘멩지실’ 또는 ‘민영’이라 하셨다. 명주의 제주말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은 상품과 하품을 따로 감아놓는다.

대나무통이나 깡통에다가 둘둘 감아서 풀 바른 구덕(천이나 종이로 도배한 바구니)에 차곡차곡 채워두면 중간상인이 집으로 소문 들어 찾아온다. 전국을 돌면서 비단실을 거둬다가 남대문시장 가서 되파는 비단장사 왕서방인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제주도내 중산간 마을에도 양잠을 업으로 하는 마을이 있었다. 4·3 때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이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양잠단지 마을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4·3 때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불태워지고 주민들이 죽임을 당한후 마을이 사라졌다.

1970년대 들어 마을을 재건하면서 양잠을 하도록 정부에서 권장했다. 17가구에 텃밭과 집터를 분양해주면서 마을 전체에 뽕나무를 심게 했었다. 전기도 안 들어가던 첩첩 산골마을로 집을 짓고 입주한 주민들은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웠으나 나일론 옷과 인견이 시장을 점유하면서 양잠은 사양길로 접어든다.

고대 세계 문명의 무역길을 놓았던 저 실크로드는 바로 뽕나무 누에고치실에서 나온 비단장사 왕서방이 걸었던 그 길이 아니던가. 지금으로부터 1800년전, 1400년전 저 당나라에서 모래바람 뚫고 터키의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또는 그 너머 로마까지도.

동방에서 서방까지 뽕나무에서 나와 찬란하게 펄럭이던 그 비단길이 이제는 나일론옷에 밀려버렸으니 뽕나무 한그루에 뽕잎 먹은 애벌레가 그립고 그리워지는 구나.

뽕잎을 먹은 누에가 똥을 싸면 그 똥은 당뇨와 위장약으로 쓰이고 그 누에가 균사체에 감염되어 동충하초가 나와도 그것은 노화방지 약으로 쓰고 번데기는 삶아먹고 고치는 비단실을 뽑아 비단옷을 지어 입을 수 있었으니 뽕나무가 주는 그 무궁무진한 재생산 자원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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