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양경인, 은행나무, 2022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양경인, 은행나무, 2022

지난 6월 17일 금요일에 아무튼 책방에 갔다. 아무튼 책방은 아라동에 있는 작은 서점이다. 주로 인문학 서적이나 독립출판 서적을 판매한다. 최근에 모슬포에 있는 어나더 페이지와 아무튼 책방과 내가 관여하는 서귀포 시옷서점이 뜻을 모아 추진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부쩍 교류가 잦아진 서점이다.

마침 양경인의 논픽션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북토크를 한다고 해서 시간을 맞춰 가보았다. 양경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가 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을 하기 몇 달 전에 나는 우연히 그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내공 있는 문장에 제주와 역사를 두루 섭렵하는 글에 놀랐다.

알고 보니 그는 제주4·3연구소 창립 멤버이며, 오랫동안 4·3을 취재하고 연구해온 이력이 있었다. 그걸 몰라본 내가 부끄러웠다. 그가 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상을 받은 것은 그간의 수고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운동가를 취재하는 과정을 기간으로 따지면 1987년 여름부터니 진정성 있는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금요일 저녁에 책방에 모인 사람들은 작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코로나 시기에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며 책방의 미래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양경인의 논픽션 취재에 대한 구술이 공간의 온도를 뜨겁게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몇 있었는데, 구술을 정리하는 일의 노하우를 들으려고 온 것으로 보였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분위기가 점점 숙연해져갔다. 평생에 걸친 인터뷰와 기록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다가 진득하게 버텨야 하는 고행의 길임을 공감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구술의 의미는 생생한 증언이다. “이년아, 어느 것이 해방이고? 어느 것이 금일 명일이고?”라는 말을 들으며 4.3운동을 추진했던 김진언의 삶. 4.3으로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산화해버렸다는 말. 오래된 원정물질과 수감 생활로 제주어를 잊어버렸다는 말을 들으면서 탄식이 나왔다.

우리가 행불자로 쉽게 분리하면서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들이 얼마나 많을까. 증언으로 여기에 기록된 인물들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분명히 논픽션인데 자꾸만 픽션으로 읽혔다. 소설처럼 여겨질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기이고, 효순미선 20주기이다. 증언과 기억은 궤를 같이하면서 유지된다. 제주민예총에서는 ‘제주4.3 예술축전 다랑쉬예술제’ 봉인을 진행했다. 봉인은 막아버린 국가의 폭력을 의미한다.

지난 6월 11일 토요일 저녁에 제주시청 앞에서 ‘효순미선 20주기 촛불정신 계승 제주대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듀엣 소금인형과 보물섬학교 학생들이 효순미선노래를 기리는 노래 ‘우리가 촛불 되어’ 불렀다. 아이들이 함께 작사, 작곡했다. “우리가 촛불 되어 환하게 비춰줄게”라며 마음을 모았다.

북토크가 끝나고 516도로를 타고 서귀포로 가는데, 마음이 좀 그랬다. 여전히 바꾸지 못한 이름 516도로. 알다시피 이 이름은 5·16군사정변을 따라 지은 이름이다. 오래 사용해서 많이 굳어진 감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되찾아야 할 한라산 길 이름이다. 이름까지 묻혀버린 그들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처럼.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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