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석 [Contour Line등고선](사진=양진우 제공)
민영석 [Contour Line등고선](사진=양진우 제공)

클럽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과 맥주 한잔을 하게 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기타리스트 누구를 가장 좋아하세요?"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군가요?"

난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저요! 전 저를 제일 좋아해요."

그러면 다들 깜짝 놀라며 헛웃음을 짓거나 민망한 듯 살짝 시선을 피한다. 물론 '거침없이 당당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전혀 실없는 얘기는 아니다.

세상엔 닮고 싶고 맘속 깊은 곳에서부터 경외심을 품게 하는 음악가들이 너무 많다. 오늘만 해도 80살의 행크 존스가 연주하는 미니멀한 선율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짐홀과 미쉘 페트루치아니의 듀오가 쏟아내는 청명한 소리에 넋을 잃었다.

그런가하면 며칠 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살 소년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는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로 두근거렸다. 그들의 타고난 성정과 고귀한 열정은 음악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럼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은 뭔가요?"

이런 질문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즐겨 들었던 김민기, 시인과 촌장, 동물원, 들국화가스쳐 지나간다. 사춘기 시절 방안 가득 울렸던 레드 제플린, 블랙 신드롬, 세풀투라, RATM등의 헤비메탈 밴드도 떠오른다.

일렉기타의 거대한 소울을 느끼며 머디 워터스, 비비킹, 알버트 콜린스 등의 블루스 음반을 밤새워 들었고 마일즈 데이비스, 존콜트레인, 에릭 돌피 등 재즈 거장들의 음악도 쉴 틈없이 듣고 또 들었다.

데이브 리브맨, 믹 구드릭, 존 에버크롬비 등 현대적 기법의 연주들은 연구하듯이 카피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조앙 질베르토의 가녀린 목소리와 기타가 좋았고 플라멩코와 파두 등 월드 뮤직도 즐겨 연주했다. 최근에는 로라 말링과 그랜트 그린에 흠뻑 빠졌었고.

하지만 이 모든 음악들을 뒤로 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은 [Contour Line등고선]이다. 기타리스트 민영석의 솔로로 연주한 이 앨범은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은 물론 딥 재즈 리스너들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알려지지 않은 음반일 것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는 물론 중고 음반가게에서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나 역시 아쉽게도 앨범을 분실해 음악 파일로만 소장중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그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한창 재즈음악에 경도되어 잠 못이루던 시절, 한 인터넷 재즈 커뮤니티에 그가 게시한 'Improvisation 즉흥연주'란 무엇인가?'라는 긴 글을 읽게 되었다. 띄어쓰기조차 되어 있지 않은 그 글을 수 차례 읽고 나서 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재즈 사이트에서 그가 연주한 곡을  듣게 되었다. 믹 구드릭류의 모던한 연주와 뛰어난 작곡력에 감화된 나는 미국에 거주 중이던 그에게  온라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연주 일정으로 잠시 귀국한 틈을 타 다시 배움을 청했다. 흠모하던 그의 연주를 바로 앞에서 직접 들었고(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많은 대화 속에서 구도와 성찰의 삶, 끝없이 정진하는 음악인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몇 번의 무대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마법처럼 펼쳐지는 우아한 솔로라인과 독특한 하모니는 내 상상을 초월한 연주였다.

다시 앨범 얘기를 해보자. 그의 음반 [등고선]은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음악들이 모여 연주하던 재즈클럽 <핫하우스>에서 레이블을 만들면서 첫 앨범으로 기획되어 2004년에 발매되었다고 한다. 다른 악기없이 기타의 오버 더빙으로만 녹음되었는데 컴핑과 솔로 두 트랙으로 나뉘어  마치 듀오앨범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타 재즈 기타 앨범과 차별되는 부분은 솔로라인과 컴핑이 획일적이지 않으며 다채롭고 오묘하다는 거다. 정통적인 재즈 릭과는 다른 다양한 리듬과 호흡, 회화적인 선율은 너무나 독특했고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제3의 흐름(Third Stream: 재즈와 클래식이 결합된 새로운  음악기법)이라 불리우던 음악형식을 품은 작법이 신선했고 곡의 화성은 깊었으며 다양한 박자에서 풀어내는 프레이즈는 신박했다.

기타톤 역시 할로 바디가 내는 두터운 음색이 아닌 클라인 기타Klein Guitar의 얇고 섬세한 음색이며 오른손 엄지 손톱으로 날카로운 피킹을 하고 중지와 약지의 핑거링은 좀 더 부드럽고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

이런 하이브리드 피킹으로 첫 곡 <Rain Song>에선 슬라이드 바를 사용해 마치 인도의 라가음악처럼 여유롭고 신비로운 멜로디를 들려준다.  4박에서 3박으로 바뀌며 분위기가 반전되는 <개구리>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작법이었고 5박자의 변화무쌍한 컴핑에 이지적인 선율과 리드믹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Bluehill> 역시 무척이나 빼어나다.

<In my heart>는 보컬버전과 연주 버전으로 따로 수록됐는데 다양한 감정이 투영된 듯 섬세하고 맑은 솔로잉이 압권이다.

연습을 하다 힘이 들때면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카피하며 오선지에 기보해 두곤했다.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 작업실 정리를 하면서 카피노트를 찾았다. 그걸 계기로 이 글을 쓰게 됐다.

아! 혹시라도 당신이 운이 좋아 [등고선] 음반을 찾게 된다면 무조건 구입하시고 깊게 아주 깊게 듣길 바란다. 설사 재즈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음악이 흐르는 어느 순간 훅하고 일렁이는 감정의 파고를 느낄 것임이 분명하니까.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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