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해당 조례안을 심사 보류 결정했다. (사진=독자 제공)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해당 조례안을 심사 보류 결정했다. (사진=독자 제공)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 제주도의회 제405회 임시회에서 심사 보류된지 일주일이 지났다. 11대 도의회 마지막 회기에서 관문을 넘지 못해 자동 폐기된 것과 다름 없지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후 열기는 식지 않고 있는 상황. <제주투데이>는 이 조례를 둘러싸고 있는 면면을 살펴본다.


결과 : 심사보류


지난 3월 29일 제주도의회 403회 임시회에서는 이 조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심사보류했다.

제주도 자치행정과는 검토의견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한 상위법령이 정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조례를 제정하면 적용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지방자치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봤다. 혐오표현금지 위반행위자에 대한 행정조치 등의 규제사항은 법률의 위임사항이 있어야 하지만, 명시돼 있지 않다는 것.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고현수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의원은 통화에서 “애매모호한 조항은 인권위법을 준용해 명확히 했고, 원안에서 문제가 되는 조항은 삭제·보완을 거쳤다”면서 “도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고, 그러한 의견을 수용한 도의회의 결정도 납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정안에서는 '혐오표현'이 '차별표현'으로 교체됐다. 혐오표현은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차별표현은 상위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이미 규정돼 있다.

혐오표현 사용자에 대해 행정조치 등 패널티를 가한다는 취지의 조항은 삭제됐다. 혐오표현 행위자에 대해선 규제를 가하는 것이 아닌 '구제'한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3개월 뒤 열린 이번 임시회에서도 심사 보류됐다. 

 


이유 : 법률유보원칙


제주도와 의원들이 회기 당시 해당 조례에 내비친 우려는 다음과 같다.

- 법에 ‘차별표현'에 대한 구체적 명시가 없어 추상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률유보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 차별표현 사용자의 인권 역시 균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 조례안 제11조의 '차별표현을 중지하도록 해야하고, 피해 원상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한다'는 내용과 관련, 법적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법률유보의 원칙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과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행정법 영역에서는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등 행정권 발동의 법률 근거가 구체적 표현으로 명시돼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해자는 본인이 받을 제재 내용을 알지 못하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인권위원회는 제1항 진정에 따른 표현내용이 고의적·지속적이거나 피해정도가 심각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가해자 등에게 필요한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안 11조 4항은 이같은 원칙에 명확히 위배된다. 그러나 수정안에서는 삭제됐다.

이 원칙의 또다른 내용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조례는 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승배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통화에서 "조례를 제정하려면 상위 법률에 명시돼 있어야 한다"면서 "차별금지법 등 비슷한 논의에 대해서 공론화가 되고, 관련 법이 제정된다면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는 이에 대해 “구체적 법률이 없더라도 조례가 헌법 취지에 부합하면 얼마든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 판례가 있다”면서 “혐오표현 방지 조례의 자동 폐기 수순은 공무원의 독단이 지방자치제도를 무력화시킨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충돌 : 성적지향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고용형태, 국적, 나이, 병력(病歷),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사회적 신분,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언어, 용모 등 신체조건, 인종, 임신 또는 출산, 장애, 종교, 출신국가, 출신민족, 출신지역, 피부색, 학력,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혼인여부 등

조례안에서 말하는 혐오표현은 이같은 예시에 해당되는 개인·집단의 특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분리·구별·제한·배제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차별과 폭력, 증오를 선동·고취하는 행위다. 4·3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도 포함됐다.

이 예시 중 유난히 찬반갈등으로 논란이 된 항목이 있다. '성적 지향'이다.

성소수자 이슈는 우리 사회에서 논의 자체가 금기시돼왔다. 관련 법안은 모두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다른 차별을 금지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보수.종교 단체는 이에 대해 ‘동성애 옹호법’이라면서 격하게 반발했다.

동성애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도 처벌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들은 조례가 상정되면서 도의회 앞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례 찬성단체인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와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차제연은 지난 15일 입장문을 내고 “우리는 개인의 자유로 선택한 종교적 신념을 그 자체로 존중한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사회적 차별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 종교는 남녀의 구분은 신이 만든 질서의 기초적 출발점으로 본다. 종교적 신념에서는 신의 절대성을 넘어서는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사회적 논쟁을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라고 맞섰다.

 


배경 : 포퓰리즘


익명을 요구한 한 도의원은 이번 임시회에서도 심사보류 결정이 난 근본적 이유로 ‘정치적 부담감’을 꼽았다.

정치구조가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고, 논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부딪히면 조례 통과는 어려워진다는 것. 여기서 국가의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유지하도록 개입.조정하는 역할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제도적 틀 안에서 논의하고, 타협하는 정치원리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원리로 제시하는 자유주의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입법 활동은 이같은 기본원칙을 유지하도록 개입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타인의 자유와 정체성을 위협하는 표현을 허용한다면 ‘대결과 경합’이 핵심인 민주주의가 위협받게 된다.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극우집단의 목소리는 다양한 견해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해야하는 권리의 보호조치를 막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면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이 혐오세력 주장에 동조하거나,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법 제정에 소극적인 것은 자유민주주의 원리의 심각한 훼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 위기,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한 시대일 수록 삶은 불안해지고, 불만도 쌓여간다.  ‘빨갱이’를 시작으로 따옴표 안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언어들로 교체되는 등 혐오는 만연해진다.

이 현상은 제주와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동과 영국 브렉시트 소동이 해외의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는 극우 파시즘 경향 정당들이 집권하거나, 큰 지지를 얻기도 했다.

기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새 제도 제정 등 대안모색을 시도하지 않고, 비합리적 정서에 호소하는 현상, 포퓰리즘이다.

서 교수는 “정치인들이 불평등과 혐오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포퓰리즘적 혐오 선동에 휘둘리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례 : 차별금지법 등


타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비슷했다.

2020년 서울에서는 ‘서울특별시 혐오표현 피해방지에 관한 조례안’이 발의됐지만 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조례안 입법예고에 반대 취지 의견이 700건을 넘기는 등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같은해 전북 전주에서 발의된 ‘전주시 차별금지 및 평등권 보호에 관한 조례안’은 시의원 20여명이 찬성했지만 역시 상임위에서 불발됐다. 찬성 명단에 오른 행정위 소속 의원 8명 중 5명은 심사를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의 보편적 인권이 학교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는 같은해 논란을 딛고 제정됐다. 그러나 역시 학교 내 동성애 조장을 이유로 종교·보수단체의 반발이 일었던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은 삭제됐다.

국회에는 차별금지법이 15년째 갇혀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인 2007년 20가지 차별금지 사유를 담은 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반발이 쏟아졌다. 이후 쟁점이었던 성적지향을 포함, 7가지 항목을 삭제한 수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좌절됐다. 이후 국회에서 발의된 6건의 법안도 줄줄이 폐지·철회됐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2020년 대표 발의한 법안에 대한 논의는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위험 : 법 만능주의


그렇다면 법률 전문가는 이 조례를 어떻게 풀이할까?

강주영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례의 상당 부분이 헌법 이념을 따르는 ‘인권 보장의 증진에 관한 조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두 조례가 중복된다는 것.

피해 종류와 지원시책의 범위, 허위사실의 정의 등 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훈시적·교훈적 규정에 불과할 뿐 실효력이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은 범위가 넓다. 법과 도덕은 이에 포함되지만 별개의 영역이다. 각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강제적 규범과 선을 목적으로 하는 자율적 규범이다.

조례도 법규범이기에 실효력을 가져야 한다. 헌장이나 윤리적 선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산도 투입되는 만큼 법을 마련하는 과정은 신중해야 한다.

강 교수는 “입법 취지는 깊이 공감하지만 법은 본질적으로 규제다. 특단의 조치가 아닌 이상 도덕의 영역을 끌고 온다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인권 영역은 캠페인이나 선언의 방식으로도 풀어나갈 수 있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조 : 인권 보장·증진에 관한 조례 


같은 상황에 대해 혐오표현 방지 조례 대신 인권 보장.증진 조례를 활용하면 일부 피해는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선언적 접근 및 소극적 활동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5년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는 인권 보장·증진을 위한 각종 정책을 발굴하고 도민이 인권침해를 당한 경우 당사자가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하는 등의 책무를 규정한다.

이 조례 역시 2013년 말에 조례안이 발의돼 의결됐지만 제주도가 국가배상법·지방재정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무산한 배경이 있다. 그러나 토론회 등 공론화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마련됐다.

이 조례에는 ▲인권 보장·증진 기본계획 수립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 설치 ▲인권헌장 선포 ▲인권교육 시행 ▲인권보고서 발간 ▲인권영향평가 ▲인권센터 설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최근들어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위원장을 포함한 인권위 구성원 6명이 사퇴하는 사건도 있었다. 제주도가 관련 정책 업무 협력에 비협조적이었고, 인권침해 사건 진정도 자체 종결하는 등 조직의 기능을 무력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제주도는 이에 “지역인권위는 구제기관이 아닌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심의조사 기능과 진정사건에 대한 조사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인권 관련 업무를 규정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는 것.

전 인권위 위원장인 신강협 활동가는 “공무원이 판단하고 끝낼 업무라면 왜 인권위를 설치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 “도지사·도 인권위의 사회적 책무는 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그저 의미없는 단어의 나열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전망 : 민선 8기 도정·12대 도의회


이 조례를 찬성하는 이들은 "앞으로 추진되는 정책이 진일보하길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다양성과 포용성, 인권에 기반한 정책을 추진하고, 관련 조직도 잘 꾸려져야 한다는 것.

오영훈 제주지사 당선인은 진영을 뛰어넘고, 지역·세대간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는 취지로 ‘도민 대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후보 시절에도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여창수 오영훈 당선인 인수위 대변인은 향후 인권 관련 정책에 대한 질문에 “세부적인 정책은 지사직을 맡고 난 이후에 추진될 것”이라면서 “‘인권’이라는 개념은 매우 방대하다.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은 모두 도민 인권의 보장 및 증진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도시생활 환경 15분 이내에 각종 시설을 갖추고자 하는 ‘15분 도시’와 도민주권 실현 공약 등도 개인의 일상적 욕구에 대한 해소, 삶의 질을 보장하고자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 이 전제가 도민의 인권 보장과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 대변인은 제주도 방문객 등이 지역주민 등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인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도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서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톤은 이미 민선 8기 도정과 12대 도의회로 넘어갔다. 앞으로 4년, 이들의 행보로 제주의 정주하는 모든 이들이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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