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자고 나란 사람들이라면 어릴 적 넋들임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른 새벽 어린아이를 들쳐업고 심방의 집을 향하던 섬의 부모들. 어디 할망이 잘 본다고 하면 그 곳이 어디든 달려가던 섬의 부모들에게 넋들임은 단순히 자식을 위한 의료행위가 아니라, 오랫동안 내려온 섬에서의 삶의 방식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넋들라, 넋들라, 바당에 떨어진 넋, 아스팔트에 떨어진 넋, 넋은 부르면 옵니다. 외면 옵니다'라고 말하던 심방의 사설은 신체의 부조화가 정신적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신화체계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그 신의 이름을 다 외우기가 버거울 정도인 1만 8천의 신들. 섬에서의 삶은 곧 신과의 동거였다.

신화적 사고체계가 현실세계의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은 그래서 섬의 신들과 함께 해 온 섬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철학으로서 신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근대는 신화적 사고에서 과학적 세계로의 편입을 강요했다. 그래서 섬사람들에게 근대는 폭력이었고, 그 폭력의 근대를 살아오는 동안 폭력적 근대는 우리들의 삶에 '내면화'됐다. 신화적 사고체계가 비과학적이라는 근대적 통념에 도전하는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통해 근대가 신화를 어떻게 변형, 왜곡하는지를 보여준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로 알려진 신데렐라는 수많은 신데렐라 판본 중 하나(페로판)에 불과하다. 그림형제와 미크마크 인디언, 그리고 중국의 설화에서도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원형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근대적 의미의 신데렐라 설화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저자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화소를 분석하며 '재를 뒤집어 쓴 소녀'라는 의미의 신데렐라가 결국 이승과 이승 아닌 세계를 중개하는 샤먼이었다는 사실을 이끌어낸다.
이 책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의미를 추적하는 하나의 멋들어진 추리 소설인 동시에 근대가 신화적 사고체계를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데렐라의 의미가 결국 미국의 영화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근대의 폭력적 구분짓기가 신화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 결국 수동적 신분상승 욕구를 지닌 여성성의 상징으로서의 신데렐라는 결국 월트 디즈니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것에 불과하다.


조금 더 논의를 확장하자면 근대가 발견해낸 학문인 민속학도 초기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근대제국주의의 식민전략에 의해 작동되었다.(식민시대 일본이 민속학 연구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를 상기해보라) 민속학의 민(民)의 의미는 중앙이 아닌 변방, 또는 소수민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초기 민속학이 섬의 신화적 사고체계를 다분히 근대적 시각으로 바라보려 했음을 증명해준다.


신화를 연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처럼 섬의 신화를 연구하는 것은 근대적 시각에 의해 박제화된 신화의 사유체계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정녕 제주의 신화를 보다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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