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관련 유골과 유물 등의 체계적인 발굴과 보존을 위해 4·3 특별법 개정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이번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 유골 발굴 작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차후 집단 매장지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원 확인 없이 화장 = 지난16일 남제주군 남원읍 의귀리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에서 집단학살 된 유골 39기(남자 15구, 여자 7, 10대 2구 나머지 미상)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날 발굴된 39기의 유골들은 17일 오전 제주시 양지공원에서 아무런 신원확인 절차도 거치지 못한 채 한 줌의 재로 스러져 갔다.

유족들은 "55년의 징그러운 세월을 이제는 잊고 싶다"며 "하루빨리 새 묘역으로 이장해 원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유족이 생존한 상황에서 누군지도 모른 채 어렵게 발굴한 유골들을 바로 화장처리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유족들 사이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대정읍 하모리에 사는 유족 김명운씨(71)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어머니의 신원을 찾아준다면 고맙지 않느냐"고 말했다.

▲ 제주대 의대 강현욱 교수는 "충분한 연고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고 확인 가능하다 =이번발굴에 참여해 유전자 감식을 독려한 제주대 의대 강현욱 교수(42.법의학)는 "유골 일부에 대한 DNA 감식으로 100% 판정이 가능하다"며 "유족의 혈액과 유골의 대퇴골(허벅지) 일부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DNA를 추출, 유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DNA 감식 제안은 단지 정확한 신원을 찾아내 유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유족들이 따라주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양봉천 유족회장은 "유골에 대한 감식비용과 차후 일부 유골의 처리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며 "일부 유족이 반대 입장을 보이는 등 의견이 통합되지 못해 당초 화장 방침을 그대로 고수했다"고 말했다.
 
차후 매장 유골 어떻게 하나 =이번 유골 발굴에 대한 '화장 처리'는 차후 잇따를 집단 매장지에 대한 유골 발굴에서 예기되는 숙제를 안겨준 셈이다.

실제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회장 이성찬)가 조만간 정뜨르 비행장 일대의 집단학살터 발굴 등을 추진하고 있어 유골 발굴 과정과 유물 발굴시 처리 문제 등에 대한체계적 준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또 제주도 제주4.3사건지원사업소와 (사)제주4.3연구소가 도내 전역에 대한 4.3유적지 1차 전수조사 결과 애월.조천읍 지역에만 147곳(희생터 35곳, 잃어버린 마을 33곳, 성터 20개소, 은신처 9곳, 수용소 3곳)이 확인됐지만 4.3유물에 대한 보호 및 보존방안이 없어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찬식 제주대 강사(43.근현대사 박사)은 "현의합장묘 집단 유골 발굴은 다른 매장지 발굴에 대한 선례가 되는 사안이었다"며 "유가족(개인)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집단) 명예회복 차원에서 정부차원의 특단이 모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4·3특별법 개정 시급 =현행 4.·특별법 제8조 '위령사업'에는 '기타 위령 관련 사업'이라 조항만 있을 뿐 4.3 유적지 발굴지원 및 보존방안에 대한 법적 조항이 전무한 상태다.

또 오는 10월 정부의 4·3진상조사보고서 확정을 앞두고 지난 4월 4·3중앙위가 건의한 대정부 건의 7대항에 '4·3 집단 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 사업지원' 내용을 포함했으나 말 그대로 건의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현행법에 4·3 매장지 및 유적지 보존 조항을 삽입하고 시행령과 조례 등에 세부방침을 마련하는 등 유적지에 대한 보호 조치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오승국 (사)제주4·3연구소 사무처장은 "앞으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발굴작업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주먹구구식의 발굴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전문 발굴팀 지원 등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처참하게 나뒹구는 4.3 유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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