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벌군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선량한 영령들이시여. 부모, 형제, 자매, 무명영가 모두 흙으로 화한 영가께서는 양지바른 유택에서 영면하시옵소서'

제주4·3 집단학살의 실체를 드러낸 남제주군 남원읍 의귀리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 영가 하관식 및 추도식이 20일 오전 10시부터 남원읍 수망리에서 열렸다.

현의합장묘 4·3위령공원으로 조성된 이 곳에는 당시 학살된 남원읍 의귀· 수망· 한남리 유족들을 비롯해 4·3 유족회와 제주4·3연구소, 기관 단체장 등 200여명이 찾아 구천을 떠돌던 원혼들의 넋을 달랬다.

지난 16일 발굴된 39구의 유해는 3개의 납골 단지에 나눠 안치했다. 단지마다 검정색글씨로 '4·3 현의합장 유해'라고 적어 당시의 실상을 기록했다.

▲ 주제사를 낭독하는 양봉천 유족회장.
이날 현의합장묘 4·3유족회장 양봉천씨는 주제사에서  "1948년 11월 7일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마을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어 버려, 님들은 눈 덮인 산야를 방황해야만 했다"며 "남들의 희생은 제주도의 정신적 비전과 '평화의 섬'의 뿌리로 거듭날 것"이라며 말했다.

이어 양 회장은 "한 시대를 슬기롭게 글복하지 못하고 서로 증오하며 미워함을 계속할때 지난날의 굴절된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며 "우리 유족들은 가해자들이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지는 않았지만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장문의 주제사를 낭독하다 설움이 북바쳐 올랐는지 간간히 목을 메기도 했다.

김영훈 제주도의회의장은 "현의합장묘는 4·3으로 인해 인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단순히 좁았던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위령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추도했다.

이성찬 제주도4.3희생자 유족회장은 "이 터전이 억훌한 영혼들의 넋을 위령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눈을 밝게하고 새롭게 깨우치는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의미를 전했다.

▲ 3개 단지에 봉안된 39구의 유골들.
'두살짜리 어린애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이날 3개의 봉분에 안치된 39구의 유골에는 생후 보름된 아기, 2살짜리 어린애, 몸이 불편한 60대 노인, 임산부 등 선량한 양민들의 혼이 담겨있다.

맨땅에 간신히 흙만 덮힌 채 추운 겨울을 나고 3개월 후에 옮겨진 원혼들은 55년의 세월 동안 길가에 방치돼 오다 55년만에 양지바른 곳에 비로서 안장됐다.

뼈아픈 상처를 남기 비극적인 역사의 제단 앞에 이날 유족들은 추모객들과 더불어 영령들에게 머리숙여 명복을 빌었다.

유족들은 "님들은 역사의 가시밭길을 헤치며 고통과 어둠속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제는 보다 편하고 밝은 세상으로 가실 수 있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납골단지를 흰 무명천으로 싸고 있다.
 '조상이 편안해야 후손이 편안하다'

고인의 봉분속을 '명당토(明堂土)'로 가득 채운들 억울함이 가실까. 이날 유족들은 예부터 선인들의 시신을 매장할때 쓰던 고운 흙이라는 '명당토'(고령토 또는 백토를 주성분으로 함)를 납골단지 주위에 고루 채웠다.

또 하관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원혼들의 넋을 달래려는 듯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까마귀 3마리가 돌담위에 앉아 지켜보다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한 유족은 '까마귀는 '순결'와 '희망'을 상징하는 숨은 뜻이 있다"며 "이번 위령공원에 묻힌 원혼들이 '원한의 땅' 제주를 '평화의 땅' 제주로 이끌어 줄 것 같다"고 말했다.

양봉천 회장은 "살아서 마음이 풀리면 죽은자로 마음이 풀릴 것"이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영면하시길 빈다"고 말했다.

▲ 하관을 지켜보는 까마귀

 '4·3 역사의 실체 밝혀내야'

▲ 현장에서 만난 유족 김홍석씨(남원읍 의귀리)는 "4.3의 올바른 실체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11살 나이에 만삭의 어머니와 어린 세동생(8살, 6살, 3살)이 토벌대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봐야 했다는 김홍석(66·남원읍 의귀리)는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았다.

김씨는 취재 또는 4·3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의귀리 지역의 집단학살의 실체를 제대로 증언하고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차를 몇해 전 '지프 차량'으로 바꿨다.

하관현장에서 만난 김씨는 "지금도 수백명의 원혼들이 한을 풀지 못한 채 도처에 내버려져 있다"며 "살아있는 동안 4.·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김씨는 표선면 토산리와 가시리 등의 인근 100여명이 주민들이 집단 학살된 곳으로 알려진 남원읍 의귀리의 속칭 '높은 모루'에 있는 한 감귤밭 현장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김씨는 "의귀리는 산남지역에서 최대의 집단 학살지로 꼽힌다"며 "언제가 역사의 실체는 낱낱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 현의합장묘  추도사

▲ 4.3 원혼들이여, 흙으로 화하소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20일 남원읍 의귀리 4.3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 영가하관 및 추도식에 보낸 추도사를 통해 "제주4.3문제를 필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4.3이 완전 해결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서 건의된 7개 건의안에 포함된 '집단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사업지원'에 대해서도 "내실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양봉천 현의합장묘 4.3유족회장은 "최근 39구의 유골이 발견된 집단학살 매장지는 차후 행정당국과 의견을 나눈 뒤 '역사의 현장'으로 재현해 후세들의 체험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보존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김유선 제주도 4.3사건지원사업소장은 "유족회와 협의를 거쳐 현장을 복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성된 묘역 1731평은 제주도(3000만원)와 남제주군(4000만원)에서 보조받고 유족들이 모은 515만원을 포함해 총사업비 7천5백만원으로 들여 마련된 것이다.
제주도는 향후 위령비를 건립하고 주차장 및 편의시설 등을 연차적으로 추진하는 성역화 작업을 통해 이 곳을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 현의합장묘 4·3위령공원 가는 길 약도.

▲ 추도식에 참가한 유족과 추모객들.

▲ 분향하는 이성찬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장(가운데).

▲ 3개의 대형봉분에 잠든 4.3 원혼들.<양김진웅 기자>
▲ 39구의 유골이 안치된 3개의 납골단지.
▲ 4.3 원혼 옆에서 태극기는 무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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