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5일 돌봄노동자의 날을 맞아, 인터넷에서 퀘벡 각 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 노동자들은 ‘나는 가정돌봄노동자’라는 직업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차기정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출처=가정돌봄 사회적경제기업 네트워크 페이스북)
2022년 5월 25일 돌봄노동자의 날을 맞아, 인터넷에서 퀘벡 각 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 노동자들은 ‘나는 가정돌봄노동자’라는 직업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차기정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출처=가정돌봄 사회적경제기업 네트워크 페이스북)

‘이용자와 노동자는 하나’, 캐나다 연대협동조합

캐나다 퀘벡의 연대협동조합(Co-opérative de solidarité). 서비스 이용자와 일하는 노동자 모두가 조합원. 게다가 조합 목적에 동의하는 외부 사람이나 기업도 구성원이 될 수 있다. 1997년 관련법 제정 이후 10년 만에 500여 개의 연대협동조합이 설립될 만큼, 당시로선 지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연대협동조합은 한마디로 매력 넘치는 사업구조다. 같은 조직 안에 이용자와 노동자를 결합시켜 수요와 공급을 하나로 통합한 것. 또한 활동가들이 제공하는 자원봉사나 기부도 증가하면서 연대협동조합은 협동과 호혜의 가치가 더 돈독해졌다. 그 결과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가스페 지역 한 외딴마을에서 기초 생필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자 주민들은 편의점, 주유소 같은 아주 기초적인 근린서비스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03년 오타와 근처 가티뉴에선 의사들이 의료센터를 지역사회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1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해 에일머르 의료생활협동조합(Aylmer Health Coop)을 설립했다.

1997년 재가돌봄사회적경제기업들(HCSEEs)의 새로운 유행을 타고 출발한 도마이네 두 로이(Domaine-Du-Roy) 연대협동조합. 퀘벡시 북부 300킬로미터 외곽 촌구석에 자리한 이 조합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결속과 대대적인 지역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예기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채 5년도 안 돼 조합원이 1000 명을 웃돌며 연매출액도 대략 20억 원을 넘어섰다.

도마이네 두 로이의 사례처럼, 높은 실업률과 고령화된 환경 속에서 연대협동조합은 의미 있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주민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도움이 절실한 고령자들한테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 조합설립 이후 창출된 100여 개의 일자리는 변두리 지방으로선 놀랄만한 고용 성과나 다름없었다. 또한 지역주민들 사이에 사회적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높아졌다.

특히 연대협동조합은 예전처럼 단지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조합들은 회원들이 이끌어가며 회원들에게 책임을 진다. 즉 연대협동조합은 사회서비스 이용자들을 노동자들과 같은 핵심파트너로 인정한다. 이용자와 노동자, 양자 모두에게 사업상의 이해관계와 성공에서 몫을 나눠가질 권리를 오롯이 부여한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래, 퀘벡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연대협동조합 엇비슷한 모델이 많이 늘었다.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협동조합이 그것.

제주지역만 해도 벌써 50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공급자’ 일변도로 운영되고 있어 안쓰럽다. 서비스 이용자는 여전히 고객, 혹은 클라이언트(Client)란 이름의 수혜대상으로 남겨 놓은 채. 게다가 사회적 협동조합 인증 자체부터 중앙부처의 권한, 지역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사명. 이게 바로 퀘벡 연대협동조합이 추구하는 정신은 아닐까.

생산자(노동자)와 소비자(이용자)가 같이 참여하고 함께 책임지는 파트너십 모델. 우리 이웃들의 필요와 욕구를 주민 스스로 충족하는 ‘함께하면 좋을 일이 생기는 경제’가 다름 아닌 사회적경제 아니던가?

지역차원에서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공급주체로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공동체 해법(Community Solution)으로서 사회적경제가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중앙부처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고 이 곳 제주에서 지방의 권한으로, 무엇보다 특별자치의 이름으로 선도해 나갈 순 없을까?

연대협동조합, 아니 사회적 협동조합이 제주마을 이곳저곳, 동네방네마다 생겨나길 기다려본다.

사회서비스 융복합의 대명사, 프랑스 ‘그룹 SOS’

프랑스 사회적기업 ‘그룹 SOS’. 설립목적 자체가 참으로 낭만적이다. '가난과 소외를 퇴치하는' 것. 1985년 아쇼카 재단의 후원을 받은 쟝 마크 보렐로(Jean-Marc Borello)에 의해 약물중독자 지원조직으로 출발했다.

사진=강종우 제공
사진=강종우 제공

그룹 SOS는 하나의 사회문제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프랑스 노숙인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낮춰준 ‘LHSS(Lits Halte Soins Sante·임시 치료숙소)’가 대표적. 노숙인을 위한 임시숙소와 건강센터를 합친 신개념 쉼터다.

LHSS의 특징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적인 건강 검진과 치료 기능만 갖추되 부족한 건 전문병원이나 알코올·약물 치료센터 등과의 연계를 통해 해결했다는 점이다.

가령 노숙인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단순히 주거만 제공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보건의료서비스는 물론 재활교육, 사회복귀프로그램까지 병행한다.

병원이나 재활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자 한 사람에 맞춰 포괄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참여자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그룹 SOS의 목적이다.

LHSS는 그룹 SOS가 벌이는 다양한 사업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병원도 여러 곳 운영하고, 매일 2000명 안팎의 노숙인들에게 거주공간도 제공한다.

전과자나 장애인, 약물중독자들을 2년 동안 사회적기업에 고용한 후 일반 기업에 재취업시킨다. 연간 약 100만 명 이상이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그 중 약 25만 명에게는 돌봄이나 주거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룹 SOS는 현재 2만 여명을 고용하며 약 1조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자국 및 해외를 통틀어 600여 개의 사회적기업과 비영리 단체를 운영한다. 한 마디로 프랑스 최대의 공룡 사회적기업인 셈.

놀라운 건 이 그룹이 정부로부터는 재정 지원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 전체 매출액 가운데 정부 보조금은 단 1% 남짓. 그런 맥락에서 그룹 SOS는 재정적 독립성을 갖춘 남다른 조직이다.

제주마을통합돌봄 명절꾸러미(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주마을통합돌봄 명절꾸러미(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회적경제를 업(業)으로 삼아온 필자로선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프랑스와 우리나라, 특히 제주의 사정이 같을 순 없다. 하지만 제주 또한 ‘가난과 소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새로운 사회서비스가 필요하다. 읍면 사각지대 어르신들의 의료나 돌봄은 여전히 방치돼 있고,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이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지지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산간에 거주하는 정착이주민들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걸 너무나 힘들어 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늘어나는 사회서비스를 일자리와 연결시켜 보면 어떨까? 그룹 SOS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자원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활용해 고용과 복지, 교육을 융복합한 사회서비스 혁신모델도 생겨났다. 바로 사회적 농업. 그룹 SOS도 노숙자나 중독자들의 치유와 고용창출을 위해 돌봄농장(Care-Farm)을 운영한다.

IT기술과 사회서비스의 접속, 실버테크 스타트업 ‘케어링’

최근 사회적경제에서도 4차산업혁명과 IT기술 진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기업가치 1000억 원을 달성해 실버테크 소셜벤처 최초로 예비유니콘에 등극한 케어링이 선두주자.

2019년 12월 설립한 케어링은 전국단위 관제센터를 매개로 어르신을 돌보는 방문요양서비스 전문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특히 케어링은 IT기술과 직영 관리모델을 결합시킴으로써 방문요양서비스 품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기존 재가요양센터들은 직접 서류를 출력해 데이터를 관리하는 등 비효율적인 업무가 많았다. 케어링은 이를 모두 전산·자동화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을 개발해 요양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 낸 것.

이를 통해 절감한 비용을 요양보호사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업계 최고 수준으로 처우를 높일 수 있었다. 게다가 케어링은 요양보호사를 본사에서 100% 직접 고용한다. 결국 요양보호사의 처우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어르신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로 이어지는 요양산업의 선순환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올 8월 기준 케어링에게 직접 서비스 받은 어르신은 전국 7000여 명. 지난해 매출 100억 원을 넘기며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설립 4년 차를 맞은 케어링은 최근 KB인베스트먼트, NH벤처투자 등으로부터 시리즈A로는 큰 규모인 300억 원을 투자받았다. 이번 투자로 케어링은 우선 자회사 '커뮤니티 케어'를 설립했다. 요양 서비스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주거, 보건, 의료, 돌봄 등을 제공하는 '토탈 시니어 케어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에서다.

돌봄의 재구성, 사회서비스 지역선순환시스템을 위하여

코로나19 장기 지속에 따른 돌봄 공백, 그리고 인구․사회구조의 급속한 변화로 말미암아 복지수요가 날로 증대하고 있다. 그만큼 지방정부의 재정부담도 만만치 않게 늘어만 간다. 무엇보다 재정효율적인 공급조직이 절실한 시기,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적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다.

유독 자유와 시장만 부르짖는 윤석열정부마저도 사회적경제를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공급조직이라 치켜세울 정도다. 실제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전체 사회서비스의 절반가까이를 사회적경제가 떠맡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1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제주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제주시소통협력센터가 함께하는 ‘돌봄의 재구성’. 지역단위에서 ‘돌봄’을 새롭게 정의하고, 돌봄 공백과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색다른 실험이었다. 짓다의 ‘농업기반 청년들의 자기돌봄’, 모두 즐거운 사회적협동조합의 ‘읍면지역 사각지대 아동돌봄’, 느나영의 ‘함께 키우고 온 동네가 지켜주는 공동육아’,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의 ‘지역사회 먹거리복지’ 등등. 제법 알차고 성과 또한 남달랐다.

올해도 폴개협동조합, 별난고양이사회적협동조합, 제주237농업회사법인, 설문대사회적협동조합 등 4곳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웃 ’동네삼춘(Social Friends) 프로젝트.

지난 3년 간 공동모금회 기획사업으로 진행했던 마을단위 통합돌봄 사회적경제 협동화사업이다. 마을 안에서 아파도, 늙어도, 장애가 있어도 끝까지 나답게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복원해 보자는 취지다. 나름대로 어쩌면 담대한(?) 도전이라 할만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통합돌봄지원센터를 위탁운영하기도 하고, 사회적기업 제주이어도돌봄센터는 용담2동 어르신을 대상으로 일상돌봄, 정서지원, 먹거리나 집수리, 세탁에 이르기까지 수요자 맞춤형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제주지역 사회적경제조직과 함께.

오영훈 도정 101대 과제 갈무리
오영훈 도정 101대 과제 갈무리

민선 8기 오영훈도정이 ‘15분 도시’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참에 지역주민들의 사회서비스 접근성과 연대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지역기반 공동체돌봄체계를 만들어 보자.

더 늦기 전에 생애주기별로, 생활 전반에 걸쳐서, 영역과 장르를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융복합 사회서비스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사회서비스 지역선순환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야말로 위드 코로나시대 돌봄 부담에서 개인을 해방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는 포용복지이자, 초저출산·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유력한 성장동력이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전 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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