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15일 동안만 공식 선거운동을 하라니..."

지난주 토요일 직장인 정한종씨(37.제주시 연동)는 제주지역 모의원이 16대 국회활동을 담은 '의정활동 보고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정확히 4년 만의 일이다.

16쪽 분량의 칼라 지면에 빼곡히 담은 온갖 치적을 보면서 그는 얼마전 중앙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에서 '제주출신 현역의원이 전체 의원 270여명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씁쓸해 했다.

더욱이 부모와 함께 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한 집에만 2부의 홍보물을 받은 셈이었다.

그는 "주변 선배가 올해 친구가 총선에 처음 출마한다며 도움을 주라고 했지만 아직 얼굴조차 본적이 없다"며 "선거때가 코앞에 닥치기 전에는 기존 의원 외에 출마하는 신인들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현역과 차별만 말아달라'

올해 4.1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 신인들이 적쟎은 고민에 빠졌다.

얼굴은 알려야 하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출마선언 기자회견'. 하지만 이 조차 제대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신통치가 않다.

최근 한 젊은 출마자는 몇몇 기자와 참석자가 없이 썰렁한 가운데 출마선언 표명을 끝내야 했다. 그 것이 전부다.

현행 선거법이 법적 선거운동 기간인 15일(올해 경우 4.1일-15일)동안만의 홍보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

더욱이 설연휴까지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올 총선에 출마하는 정치신인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현역의원들의 당리당략에 밀려 사전선거운동을 규정한 선거법 개정(안)이 지연되면서 발에는 족쇄가 채워지고, 입에는 재 갈이 물린 형국이다.

날이 갈수록 정치신인들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일 방법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비교적 정치신인들이 많은 제주지역 열린 우리당 관계자는 "사실상 법적 선거운동기간은 딱 15일"이라며 "이 것도 지난해 17일 보다 오히려 이틀이 더 줄어들 예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더욱이 지역 선거구 조정안 등을 담은 선거법이 국회 공전을 거듭하면서 이들의 '얼굴알리기' 기회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현역의원들의 물갈이론과 '공정한 공천경쟁'은 먼 이야기로 들린다.

한 젊은 출마자는 "현역의원들이 진정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려 한다면 우선 정치 신인에 대한 차별조항부터 고쳐야 한다"며 "그러나 누가 기득권을 포기하겠느냐"고 탄식했다.

▲ '불평등 선거법 이대로 안된다'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단지 현역의원과 차별만 하지 말아달라는 것 뿐입니다"

현역의원들은 하루에 수도 없이 해당 선거구를 돌며 의정보고서를 뿌리고, 또 의정보고회를 통해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신인들은 명함조차 제대로 돌릴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들은 또 "현역의원은 후원회를 열어 수억원의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도 있는데 반해 신인들은 후원회는 커녕 제대로 출마를 알리기도 힘들다"며 불평등 선거법은 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공식행사 석상에서 조차 제대로 소개를 하면 현행 선거법 위반에 걸리기 쉽상이다.

심지어 핸드폰 문자메시지까지 유권자를 대상으로 보낼때는 영락없이 현행 선거법 위반이다.

민주당 제주시지구당 관계자는 "현역의원과 정치신인 간의 불평등을 제도화한 현행 선거법을 즉각 개정하지 않는다면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특혜시비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출마 후보는 "행사자리에서 'ㅇㅇㅇ당에 누구입니다'라고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악수만 하며 눈도장만을 찍기에 바쁘다"며 기존의 정치 장벽을 몸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경우는 당차원에서 ▲불평등 선거법 즉각 개정 ▲후보 예정자 예비등록제 도입을 통한 신인 선거운동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출사표를 던진 한 후보예정자는 "지난해 말 뒷면에 경력사항을 넣고 명함을 만들었다가 주변에서 선거관리위원회로 부터 고발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얘기에 폐기해 버렸다"며 "도대체 공정한 정치 도전의 길이 열려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정당 관계자는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급격한 발달과는 아랑곳없이 선거 관련법 모두가 아날로그 수준"이라며 "의사소통 수단이 간편해지고 있는 마당에 진정한 'E-Politics'는 요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낮잠자는 선거법 개정안'

▲ 국회의 시간은 지금 낮인가, 밤인가?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총선 90일 전부터 신인들도 홍보물 배포 등 부분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 ' 선거법 개정안'이 긴 잠에 빠져있다.

지난 16일 시행일(올해 4월 15일 총선 90일 전)을 넘기고도 의원 정수 문제 미타결 등을 이유로 처리를 미루고 있는 것.

더욱이 특위는 선거법 개정안 중 '총선 90일 전부터 의정보고회 금지' 조항에 대해 "현역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오히려 금지기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국회 정개특위는 지난해 말 '총선 90일 전 신인 선거운동 허용 및 의정보고회 금지' 조항과 함께 신인들도 선거사무소를 개설하고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하면 후원회를 열어 선거자금 모금도 가능토록 한 것 등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했었다.

하지만 일부 현역의원들의 반발로 '의정보고회 금지 및 신인 선거운동 허용기간'을 '총선 60일 전'이나 '30일 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오히려 정치 '시계 바늘'이 꺼구로 가고 있다.

북제주군 지역 한 출마자는 "올해 설을 전후해 곳곳을 돌며 각종 모임에서 얼굴을 알리려고 했는데 난감하다"며 "선거법 개정시 홍보물도 가능하다고 해서 준비해오고 있었는데 늦어지고 있다"고 속상해했다.

이처럼 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현역의원들은 당초 개정안상의 의정보고회 금지시점인 지나 16일 이후에도 의정보고회를 여는 등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신인들은 하루하루 살 얼음을 걷듯 조심스럽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지만 신인들의 마음은 한동안 꽁꽁언 한 겨울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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