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고교 졸업반의 취업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학교에 찾아와 취업을 권장하는 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死농공상(農·工·商)'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정보화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초급 기능직과 사무직 인력수요가 줄어들어 취업기회가  축소되고 불투명해지고 있다.

반면 도내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81.9%를 기록했다. 올 2월 도내 실업계 고교 졸업자 2479명 가운데 2031명이 대학(전문대학 진학자 1679명 포함)에 진학했다.

실업계 고교 진학 담당자는 "학교도 열심히 일자리를 알아보겠지만, 너희들도 스스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을 알아 보라’고 얘기한다"고 푸념했다. 이 관계자는 "취업 추천이 온다 해도 입사 자체가 쉬운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 대학에 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업계 진학률 가파른 상승세=실업계 졸업생 진학률이 81.9%라는 것은 '지식정보화사회의 수요자 요구에 부응하는 우수 기능능력 양성'이라는 실업계 고교 설립취지를 무색케 한다.

당장 취업을 하더라도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할 때가 허다하다. 상고를 나온 김모씨(20·제주시 삼도2동)는 "초봉 50만원을 받으면서 중소기업에서 4개월 가량 근무했다. 그러나 주업무인 전산처리작업보다는 잔심부름이 더 많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업계 고교 졸업생은 70∼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률이 30%수준으로 만성적인 구직난에 허덕일 때도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보여 왔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특히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거치면서 취업 기회가 크게 축소됨에 따라 학생들은 전문대학이라도 졸업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채용시험 합격자가 없다=실업계 고교 졸업생 가운데 취업경로를 살펴보면, 졸업을 앞둔 고교생 취업반의 암담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2월 졸업생 가운데 취업자는 373명이다. 전체 졸업생(2479명)의 15.0%(남자 227명·여자 146명)수준이다.

취업경로를 살펴보면 친지·친구 소개가 152명으로 가장 많고, 실습 88명, 학교 추천이 60명이다. 부모가 사업주인 경우에는 17명이다. 또 기타 경로가 56명이며, 채용시험을 거친 자는 단 1명도 없다.

특히 전체 취업자 가운데 59.8%인 223명이 전공분야를 찾았을 뿐 나머지  40.2%인 150명은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취업을 했다.

▲농촌 실업계고 정원미달 '심화'=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6월말을 기준으로 도내 공·사립 28개 고교 가운데 정원에 미달된 학교는 21개교로 파악됐다. 정원미달 학생수는 총 정원 1만9659명 가운데 6.91%인 1359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총 정원의 5.60%인 1133명보다 1.31%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특히 도내 12개 공·사립 실업계고의 정원 미달률이 12.7%에 달했고, 이 가운데 정원을 유지한 학교는 제주여상이 유일했다.

특히 관광해양고(옛 성산수고) 31.6%를 비롯해 표선상고 30.6%, 고산정보고 28.6%, 애월상고 23.6% 등 농촌지역 소재 고교의 정원미달 현상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인문계 고교로 전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성화만이 살 길"=물론 '실업계 고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조심스레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론화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취업난이 가중되고 실업고 지원률이 뚝 떨어져 실업교육이 파행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실업계 고교들은 시대변화에 따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게 특성화 고교로의 전환이다.

실업계 고교가 학과 개편을 비롯해 교명까지 변경하면서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적응키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

이미 관광지 특성을 반영해 제주농업고등학교가 제주관광사업고등학교로, 성산수산고등학교가 제주관광해양고등학교로, 고산상고가 고산관광정보고로 각각 바뀌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다. 아무리 정보화시대라고 해도 기초기능과 사무능력을 갖춘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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