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귀포에 간 김에 지난해 새로 건립한 <서복전시관>에도 가보고, 정방폭포 바닷가에도 내려가 보았다. 맑은 날씨 탓이었다. 그런데 물이 줄어서인지 폭포 절벽 상단 물이 내렸던 자리가 너저분한 자국들로 남아있고 그 주변에 전에 보지 못했던 글자 비슷한 것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수소문한 결과 그것은 지난 2003년 서복전시관의 개관을  앞두고, 서귀포시가 전설로 전해 오는 ‘서불과지' 과두문자를 새겨 넣은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조선조 말의 학자인 김석익의 파한록(破閑錄)에 ‘서귀포 해안 절벽에 진나라 방사인 서불이 새겨 놓았다는 글자 흔적이 있는데, 제주 목사 백낙연(1877~1881)이 이런 전설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긴 밧줄을 내려 글자를 그려오게 했다. 글자는 모두 12자였는데 과두문자여서 해독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글자를 그려버린 것이다.



이제 거의 십 년 전의 일이지만 필자는 제주MBC 취재팀의 일원으로 이 절벽을 자세히 조사한 바 있다. 그때 등산 경험이 있는 일행 중 한 사람이  밧줄을 타고 절벽을 샅샅이 훑었으나 결국은 아무 것도 찾지 못했었다. 그 후 다시  서귀포시가 이 절벽을 조사했으나 역시 전설 속의 그 글자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은 ‘서불'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보다는 전설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서귀포시가 그렇게 그리는 서불이란 사람은 애초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제(齊) 지역 사람이다’는 단 한 구절만이 기록돼 있고, 다른 기록은 없다. 사마천이 어떤 사람인가. 정확한 역사를 남기기 위하여 남자의 상징물을 제거하는 궁형까지도 감수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의 <사기>는 세계 역사의 귀감이다.



서불에 관해서 전해오는 전설이야 우리 모두가 아는 것이니까 되풀이하지 않겠다. 설사 그것이 역사여도 그렇다. 진시왕의 영달이나 위하여 불로초 따위나 캐간 서불의 전시관을 세운다는 것은 지나친 사대주의이며 억지이다. 더구나 이 전시관의 전시는 ‘서씨 가계도'와 ‘서불의 생애'등 서불 관련 실을 중심에 설치하고, 거기 종속적으로 ‘서귀포시의 연혁'과 ‘역사' 같은 서귀포 관련 실을 전시하여 마치 서귀포시가 서불에게 종속된 느낌을 주고 있다. 서불만 생각하다 보니까 ‘역사의 숲'을 보지 못한 결과이다. 전시 방법도 그 문화 수준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역사란 더도 덜도 없는 그 자체이며, 그러기에 옛날부터 사관들은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사실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동호직필(董狐直筆)'이라는 고사의  내용은 이렇다. 사관 동호는 춘추시대 사람이며, 당시 영공(靈公)은 포악하기로 유명했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궁중의 담장을 호화롭게 하고, 누대(樓臺)에 올라가 사람들을 던져서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곰 발바닥을 덜  삶았다 하여 주방장을 죽여서 난도질하고  그 시체를 삼태기에 담아 궁녀를 시켜 머리에 이고 온 궐내를 돌아다니게 했다. 이를 참지 못하여 조순(趙盾)이라는 정승이 만류하는 상소를 올리자 영공은 자객을 보내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객은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자기가 나무에 박치기를 하여 자결하고 만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조순의 사촌 동생 조천(趙穿)이라는 뚝심 있는 친구가 일어나 마침내 영공을 죽이고 말았다. 이때 조순은 시해사건을 미리 짐작하고 국경 근처로 몸을 숨겼다가 거사가 끝난 다음에야 조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관 동호가 ‘조순이 국군(國君)을 시해했다’고 사초(史草)에 적어놓은 다음이었다.



조순은 극구 변명하였으나 동호는 당당하게 말했다. “정승의 몸으로 국난 중에 도망간 것도 잘못된 일인데 돌아와 역적을 다스리지도 않았으니 시해의 장본인은 바로 당신이다"



사관의 소임과 예지를 알리는 서릿발같은  책망이었다. 역사란 오랜 세월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지켜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소위 역사를 알고 전하려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사기행각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후대에 오는 우리 자손들은 여기 새겨진 과두문자를 사실로 믿을 것이 아닌가?



여기에 그것이 가짜임을 기록하여 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한다.<오성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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