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김진웅 기자
최근 제주 사회가 겪고 있는 두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다.
하나는 37년만에 고국을 찾은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의 입국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55년만에 4.3 집단학살의 실체가 드러난 현의합장묘 유골 39구의 발굴이다.
이 둘은 분단이 만들어낸 '이념적 상흔(傷痕)'과 '국가 공권력의 희생양'이라는 두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수차례의 입국을 시도한 끝에 어렵게 고향에 들어온 제주출신 송 교수와 55년 동안 억울함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숨을 죽여야 했던 4.3 유족들은 어쩌면 닮아 있다.

'무엇을 그들을 가로막는가'

현행 국가보안법 대로라면 송두율 교수에 대해 반국가단체 구성 등의 혐의에 따른 소위 '간첩'이라는 이름을 씌워진다.
만약 송 교수가 현행 법 체제 내에서 사법적 처리를 받게 된다면 송 교수의 고향 방문을 고대하고, 심지어 귀국 추진 서명운동까지 펼친 도내 학계.언론.교사.시민단체는 물론 평범한 회사원과 주부들은 모두 '간첩 찬양 고무죄'가 되는 셈이다.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한때 금단의 영역인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이유로 '간첩=송두율'이라는 등식이 씌워진다면 이는 바로 메카시의 망령과 다름아니다.
오는 10월 23일부터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 주민들이 '평화의 섬' 제주에 모여 한바탕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남북평화축전이 열리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난 16일 발굴된 현의합장묘 4.3 유해들은 정확한 신원확인을 통한 '진상규명'이라는 주변의 바램을 져버린채 4.3 유족들에 위해 다시 땅속에 묻혀버렸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징그럽다"며 서둘러 화장(火葬)하기를 원했던 한 유족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또렷히 남는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현재 진행형인 '제주4.3' 만큼이나 송 교수의 문제는 깊게 패인 이념의 갈등과 골이 쉽게 치유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념의 장벽을 걷어내야'

내달 중이면 '공권력에 의한 주민 집단 희생'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진 4.3 진상조사보고서가 최종 확정된다.
이어 열리는 제2회 평화포럼에서는 '대통령이 공식 입장 표명을 할 것'라는 성급한 이야기도 나온다.
전쟁의 포화는 멈췄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울리는 '소리없는 총성'은 여전히 어느 한쪽(남과 북)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에 정부산하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해외민주인사 33인과 함께 초청한 송 교수에 대해 지난 2000년 늦봄 통일상 위원회는 송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현재 안팎에서 일고 있는 보.혁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쩌면 남북 모두가 감내해내며 극복해내야 할 이 시대의 업보(業報)다.
이제 우리는 분단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복원(復元)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이념'이라는 한 커플을 벗기면 나의 사랑하는 동족이요. 분단이라는 철조망을 걷어내면 피를 나눈 형제들이요, 나의 친구들이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의 장벽을 걷지 않는다면, 남북녁의 동포들은 세계 유일의 '경계도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55년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갔지만 여전히 4.3 유족들에게 씌워진 멍울이 벗겨지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는 제주출신 송두율 교수가 비록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가 분단국가의 '경계인'일 수 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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