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영의 사랑이야기] 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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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의 사랑이야기] 술 이야기
  • 제주투데이
  • 승인 2004.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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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술 이야기를 쓰니까 사람들은 나를 술꾼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목이 말랐을 때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시면 벌써 취하는 느낌이 든다. 결론을 서둘러 말한다면 술을 좋아는 하지만 많이는 못 마신다는 얘기다.

외식을 할 때는 대부분 소주를 마시지만 소주도 한두 잔이면 이미 취하는 느낌이다. 다만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니까 오며 가는 술잔을 사양 없이 다 받아 마신다.

그래서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와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어서 집 냉장고에는 언제나 와인이 차갑게 채워져 있다. 와인은 일단 병을 따면 다음날까지 놔두는 것은 재미없는 얘기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다 마신다.

물론 좋아서 마시는 것도 있지만 김빠지게 남기는 것이 아깝고 해서 마셔 버리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와인을 마시고는 숙취로 고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술이 받는 체질이고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해서 즐겨 마시지만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슬플 때는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이다.

약 올라서 마시는 술, 실연해서 마시는 술은 싫다. 우선 맛이 없기 때문이다.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 몸이 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술은 즐겁게 좋은 사람들과 마셔야 맛이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예전 같지 않아 체력에 한계가 있는지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오며 가며 권하는 술잔을 다 받아 마시지를 못한다. 이미 체력적인 뒷받침이 안 된다는 얘기다.

요즘에는 호텔 바에서 칵테일을 한두 잔 마시는 정도의 주량으로 줄었다.
칵테일을 즐기는 법에 프로즌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크랏슈드아이스와 재료를 한꺼번에 믹서에 넣고 빙과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다.

프로즌 스타일의 왕이라면 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즌 닥키리가 있다.
그의 장편소설《표류 하는 섬들》에서 주인공 토머스가 하바나의 술집 프로리다에서 설탕을 뺀 프로즌 닥키리를 더블로 몇 잔이고 마시는 장면은 너무도 유명하다.

헤밍웨이의 표현을 빌리면 ‘마실수록 눈가루를 휘날리며 스키를 타고 빙판을 달리는 기분’이라고 했다. 정말 멋있는 표현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소설의 주인공 토마스는 체력이 대단한 것 같다. 앉은 자리에서 물론 천천히 마시고는 있지만 더블로 닥키리를 아침부터 열 잔씩이나 계속해서 마시는 것이.

닥키리의 재료는 럼을 기본으로 라임쥬스 또는 레몬쥬스에 설탕을 섞는 것이다.
닥키리라는 이름은 쿠바의 광산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쿠바는 세기 초 오랜 시간에 걸쳐 스페인의 통치하에 있었다.

독립하는 데는 미국의 힘도 빌렸다. 어떻든 거기에는 럼과 라임 그리고 설탕과 과일 같은 것이 많아 생긴 칵테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헤밍웨이가 더없이 사랑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나도 쿠바에 관심이 있고 프로즌 닥키리에 관심이 있다.

‘두 사람에게 건배. 두 사람이 이제부터 저지를 모든 잘못에 건배.’
‘표류 하는 섬들’이란 작품 속의 유명한 대사이다.

그런 대깔스러운 대사는 말하지 않더라도 바 한 구석에서 때때로 한두 잔 마시는 프로즌 닥키리는 나를 더없이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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