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든 꽃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빨간 장미 같다거나 하얀 백합 같다거나 코스모스 같다거나.

나는 꽃 중에 코스모스를 가장 좋아하지만 코스모스처럼 가냘픈 느낌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그런 걸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자기를 닮았다고 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내 생일에 나름대로 꽃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 빨간 장미였다. 그 누구에게서 보내 온 것이든 모두 빨간 장미였다.

내 인상이 빨간 장미 같다는 의미인지, 내가 쓰는 글이 그런 느낌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꽃이 장미라고 생각해서인지, 그 점은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덕분에 집안을 온통 빨간 장미로 장식했다.

꽃에 비유한다면 나는 해바라기가 아닐까 하고 남몰래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나에게는 섹시함도 없고, 덩치도 크고.
그런 점에서 말이다.

'코스모스 같은 여자.' 라는 말을 단 한 번이라도 들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얘기를 남동생에게 한 적이 있다.

내 남동생은 정색을 하면서
"누나 꿈도 야무지다. 그 덩치에?. 호박꽃에 비유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해야지. 감히 코스모스를 넘보면 됩니까?"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나다 못해 '얘가 내 동생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여자는 그처럼 어떤 꽃에 닮는 모양이다. 그리고 닮은 그 꽃의 향기가 그 사람의 냄새이기도 하다. 가장 어울리는.

그래서 코스모스 같은 여자가 동물적인 진한 향수를 뿌리면 이상하다. 해바라기인 내가 환상적인 향수를 뿌리면 어울리지 않듯이. 자기가 닮은 꽃에 가장 가까운 향기를 살짝 뿌리는 게 좋다.
예전에 사귀던 남자를 오랜만에 만나면 "향수 바꿨네."하는 얘길 듣는다.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면 그 향수를 사용하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도 어느 남자와 헤어질 때쯤 되면 마치 처음 느끼는 것처럼 "향기 좋은데."라고 했다.
나라는 여자에 대한 발견이랑 놀라움이 없어지면 우리들 사이에 향기만이 남는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크리스챤·디올의 '리멤버미'를 애용했다. 내가 그렇게 닮고 싶었던 코스모스 향기와 비슷해서였다.
어느 날 밤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무슨 향수야?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향긴데!"라고 했다.

칭찬해 준 것은 기뻤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불길한 말이었다.
그 밤처럼 노심초사한 적은 없었다.

그 후 결국 리멤버미를 사용하지 않게 되고 말았다.
지금 내가 뿌리고 있는 향수는 남성용이다. 달콤하지도 않고 조금 햇볕에 쬔 냄새가 나는 말하자면, 해바라기다.

나이가 들수록 무미건조한 해바라기 쪽이 웬지 편하다.
그러나 내 인생에 '코스모스 같은 여자'가 될 기회가 이젠 없다는 게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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