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공연 유치 일화 수록

작가의 체험·인간에 대한 애정 잔잔한 감동

원로 언론인이며 작가인 김평윤 선생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정갈한 겨울 숲에 든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런 문장으로 그가 작품집 <평화와 건반>을 냈다.

제1부 ‘평화와 건반' ‘코 고는 소리' ‘최 선배' ‘네 명의 부인들' ‘김소운(金素雲) 유문(遺聞)' ‘일본 문단 풍토기' 등 아홉 편, 제2부 ‘서귀포 칠십리의 재조명'과 ‘대포 해안에서 발견한 법화사 주초석' ‘조명암(趙鳴岩) 시인의 인간과 문학', 그리고 시인 김광림(金光林) 선생이 작가에 대한 추억 ‘새삼 되새겨보는 감동'과 연보를 끝머리에 달고 있다.

성격별로 보면 1부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 넌 픽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며, 2부는 평론 성격의 작품들이나 어느 것이나 작가의 체험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배어있어 읽는 이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온다.

‘평화와 건반'은 그가 젊은 시절 한국일보 주일특파원을 할 때 연주 차 도쿄에 와있던 당대 최고의 피아노 연주가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을 본사 사장의 명령으로 서울 연주에 초청해내고, 이화여대 강당에서 연주회를 갖기까지 긴박하고 드라마틱한 상황을 단정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회사가 발행하는 다섯 종류의 신문 가운데서 영문지인 K타임스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 회사의 주일 대표인데 루빈스타인을 뵙고 싶다. 오늘 몇 시가 좋겠느냐고 물었다. 여성의 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뜻을 전하는 것 같더니, 하오 두 시에 오라는 것이었다. 즉답을 얻어낸 것이었다."
이상은 그가 처음 연주가와 만나기로 전화 연락을 하고 약속을 얻어내는 장면이다. 작가는 참

혼신의 정열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한 것 같다.

“조국 폴란드를 그렇게도 사랑하는 그가 역시 한국을 사랑하는 한 청년의 정열을 이해해 주고 관심을 가져나 줄까." 이런 조바심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심전심이더라고 루빈스타인은 그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드리고,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실지로 이 때 일을 맡아 추진했던 본인의 심정, 그 감동이 얼마나 컸으랴.

‘코 고는 소리'는 이렇게 뛰어 다니는 가운데 호텔이나, 차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코를 골아서 당황했던 이야기. 자기가 당한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도 인생의 어떤 경지이다.

‘최 선배'는 6·25 피난 시절 피난지 부산에서 만났던 한국은행 인사부에서 처음 만난 선배 이야기다. ‘단정한 모습은 귀족적이고, 수줍어하는 모습은 궁중에 출사하는 선비를 연상케 하는' 사람. 그가 세월이 흘러서 작가가 신문사를 그만 두었을 때 주일대사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러 먼길을 달려왔던 아름다운 신뢰를 쓰고 있다.

‘네 명의 부인들'이야말로 파란만장한 소설거리이다. 실제 인물인 것 같기도 하지만 조택원(趙澤元)이라는 무용가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 부인 최옥진. 그녀와 사이에는 음악을 하는 딸이 하나 있다. 두 번째 부인은 서울의 당대 미인 배우로 유명한 김소영. 조택원은 그녀와도 결혼하나 그 후 10년이 지나서 남편의 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헤어진다.

제3부인 오자와 준코. 그녀와는 공연을 위해 파리 체재 중 결혼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제4부인 역시 같은 무용단의 제자인 김문숙. 그러나 조택원은 그녀와 16년을 함께 살고 76년 봄  서울에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다.

그 후 20년이 흘러서 네 번째 여자 김문숙이 고인의 창작무용 ‘학(鶴)'을 춤춘다. 이와 같이 그의 이야기는 어느 것이나 흥미진진하여 책을 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러기에 김광림 선생은 그의 작품을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텍스트로 삼았을 터이다.

김평윤 선생은 젊어서 한국은행에 입사하나 나중 장기영씨를 따라 한국일보 주일 부사장을 지내며, 퇴직 후는 일본에서 ‘작가(作家)'사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하이꾸를 하는 시인들과도 교류한다.

1985년 일어 소설집 ‘푸른 점묘'를 낸 바 있으며, 제주수필협회와 서귀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제주문화사 발행, 국판 하드카바 255페이지.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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