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멋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멋있게 포용력 있게 그렇게 있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싸웠다고 하자. 그럴 때도 가능하면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 포용력은커녕 토라지고 치사해지고 꼴불견이 되고 만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질투도 하게 된다. 아주 작은 일도 용서할 수 없어진다. 어째서 그처럼 째째해지고 꼴불견이 되고 마는가.

왜 좀더 관대하고 멋있게 못하는가. 그러고 있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정말 꼴불견이다.

그런데 그런 꼴불견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정말 사랑하게 되면 꼴불견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 앞에서 멋있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아직 상대방에게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만일 당신의 애인이 당신 앞에서 그런 꼴불견이라면 그것은 포용력이 없는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얘기다.

거꾸로 멋있는 얘기만을 당신에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빠져 있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순애(純愛)라는 것은 멋있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순애야말로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면 괴로운 것이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괴로움도 깊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엉망이 되지 않고 폼 잡고 있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괴롭다고 한다. 천만에다.

혼자 있는 것이 외려 편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훨씬 괴롭고 고독하다.
단순히 외롭고 애달파서 괴롭다는 뜻이 아니라 훨신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알면 알수록,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을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또 잡혔다 싶으면 오히려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마 그러는 동안에 여러 가지 과정을 지나면서 더 강하게 맺어지는지 모르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앞에서 한없이 꼴불견인 사람과 폼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럴 때 폼 좋은 사람을 택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몇 번 거듭되는 얘기지만 정말 상대방을 사랑하면 폼 좋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꼴불견으로밖에 있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멋있는 게 아닌가 한다. 정말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엉망이 되고 마니까.

사랑을 하면 바고가 된다는 말은 있어도 사랑을 해서 똑똑해졌다는 얘긴 들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렇듯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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