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 한국음식을 가져 가 본 적이 없다. 하기야 길게 여행을 한다고 해도 15일 정도였으니까.

그 기간 동안에 그 나라의 요리를 먹는 게 즐겁고 좋았다.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 몸부림 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친구나 같이 가는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다. 간장, 고추장, 라면, 김, 그것도 모자라서 멸치까지 볶아서 간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요즘 간장, 고추장 들고 가는 사람들이 어딨어. 퓨전 음식이다 뭐다 하면서 난린데․ ․ ․. 한국음식 좀 참았다가 갔다 와서 먹어․ ․ ․.”라고 빈정댄다.

그러면 그들은 “모르는 소리하지마. 한국 사람은 고추장, 간장이 없으면 시체야. 사람은 만일을 생각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구. 매사에 준비성이 있어야지․ ․ ․.”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나라의 음식만 먹어도 곤란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지난 1월. 여동생과 15일 동안 러시아 여행을 했다.

러시아는 두 번째였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즐거웠다. 그곳에서 먹는 음식도 역시 맛이 있고 좋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빵도 사먹고 보드카도 매일 마셨다. 한국음식이 그립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심한 설사를 했다. 다음 날은 열이 났다가 오한이 났다가 하다 구토까지 했다.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꼬박 이틀을 호텔에 드러누웠다. 아무튼 기운을 차려서 한국까지는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순간 된장국에, 간장을 넣고 조린 고등어조림이 몹시 먹고 싶었다. 한 번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떻게라도 해서 한국 식당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리운 것은 간장 맛이었다. 구토증과 열 때문에 식욕이 전혀 없었는데도 몸속에서는 간장과 된장을 원하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옆에 스웨덴 여자가 살고 있었다. 한국남자와 국제결혼을 한 여자였다. 남자는 번역 일을 하고 있어서 늘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애가 셋이었다.

그 여자는 남편 일에 방해될까 봐 애들 셋을 데리고 공원엘 왔다. 매일.
나도 애들을 데리고 공원엘 갔다.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났다. 우린 금새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 여자가 말했다. ‘간장 냄새 때문에 죽겠어요.’라고.
역겹다 못해 구역질이 나고 그 냄새 때문에 몸에는 항상 미열이 있다고 했다.

애들 때문에 쉽게 스웨덴에 갈 수 없는 게 서럽고 치즈와 스프생각 때문에 매일 눈물이 난다 했다.
그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 부엌일을 할 때마다 한 잔 두 잔 술을 마셨다.

그것이 한 병 두 병. 끝내는 알콜 중독이 된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그 후 나는 그 여자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간장 냄새가 싫다고 하던 그 여자의 파란 눈동자가 가끔 생각난다. 너무도 슬퍼 보였다.
얘기를 처음으로 돌리면, 그래서 그 날 나는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을 다 뒤졌다.

결국 된장국을 먹었다. 고등어조림은 아니더라도 구운 생선을 간장에 찍어 먹을 수 있었다.

거짓말 같이 구토증이 사라졌다. 열도 내렸다. 한국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그리고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된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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