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가 되어주시는 도민곁에서

존경하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우근민 입니다.
그동안 저를 격려해주시고 질책하면서 제주발전에 헌신하도록 도와주신 뜨거운 성원에 서면으로나마 진솔한 마음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저는 지난 4월 27일 대법원 판결에 의해 도민들이 맡겨주신 제주도지사직을 상실했습니다. 그후 며칠동안 저는 착잡한 심정을 정리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민들의 준엄한 명령으로 위임받은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된 죄책감과 한결같이 사랑해 주신 도민들의 고마움에 보답할 길을 찾지 못한 답답함이 저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사법부의 최종판결에 더 이상 소청할 길은 없지만 법리적 해석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조류를 타고 나타난 시대의 명령으로 자위할 뿐입니다. 그 시대의 명령이 역사적 진실에 근거했는지의 여부는 먼 훗날 평가되고 규명되리라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저는 도민들께서 가장 오래 선택하고 신뢰해준 도지사로서 책무를 수행해 온 보람과 자긍심을 평생 영광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저는 소금끼 짙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온 어린시절을 거쳐 중앙무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키워온 제주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은 ‘제주가 더욱 커져야 하고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끝자락에 있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세계무대의 중심이 되고 제주의 지혜가 세계문화의 큰 획을 긋는 신문명 원천의 섬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추진한 주요 정책은 모두 그 바탕 위에서 수행되었습니다. 국제자유도시 건설은 기존 지역산업이 붕괴되는 현실을 타개하고 제주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정책으로 혼신을 다해 추진해왔습니다.
이 정책의 성패에 따라 제주가 세계무대에서 각광을 받느냐 아니면 침체된 섬 지역으로 소외되느냐 하는 운명이 결정되어질 것입니다.

한국의 1%가 아니라 세계의 1%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이 정책의 성패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세계평화의 섬 추진, 대북한 지원 등의 평화사업 등도 모두 이와 관련하여 추진해왔습니다.

제주미래 비전 제시와 함께 깊은 관심을 가져온 정책은 힘없고 가난한 소외계층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양지에서 변함없이 태양빛을 받고 살아온 계층보다 음지에서 인생의 비애를 극복하면서 생활을 개척하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희망을 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노인과 스승을 공경하며 아름다운 사회질서가 살아있는 제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뛰어왔습니다. 그 결과 제주의 사회복지정책은 전국에서 가장 앞서 왔고 가시적성과들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기조가 유지되면 제주가 사회복지의 낙원이 되는 날도 곧 올 것입니다.

제주경제를 지탱해온 감귤과 관광산업의 육성은 생명산업의 보호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감귤은 정책상의 많은 쟁점과 이론들이 제시돼 왔지만 가공공장의 건설로 처리체계를 다원화 함으로써 농가소득을 보다 높이는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아울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장기 감귤진흥계획을 확정, 실행에 착수함으로써 감귤의 생산과 유통은 안정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관광산업은 제주 지존의 산업으로 그 자리를 굳혔습니다. 공항확장, 서부산업도로의 고속화, 국제컨벤션센터와 월드컵경기장 완공, 밀레니엄관 건설 등 기반시설의 계속적인 확충과 프로그램 개발로 시대흐름에 맞는 선진형 관광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관광과 국제회의산업, 관광과 스포츠의 연계로 지역경제 규모를 키워낸 것은 도민과 관련업계의 큰 도움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민 50년 恨을 풀어낸 4·3의 문제를 재임 중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4·3특별법 제정, 4·3진상보고서 확정, 4·3에 대한 대통령사과, 4·3평화공원 추진, 화합과 상생의 정신 선양 등은 한국 현대사에 큰 산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도민 대통합의 기틀을 다지는 시너지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그 외에도 저는 몇가지 정책들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청정환경의 브랜화를 통한 1차산업의 육성, 문화예술재단, 신용보증기금 설립, 여성 특별위원회 설치, 지역항공사 설립, 탐라영재관 건설 등도 혁신사업들입니다.

제주는 지역의 한계성으로 중앙재원 의존율이 높습니다. 중앙재원 유치는 지도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민선 2기 취임당시 제주도 예산규모는 5천억원이었습니다. 2004년 제주도예산은 1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예산규모는 보이지 않는 제주의 힘입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습니다. 저는 민선 3기 취임 당시 2011년 도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 것을 공약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과 예측은 변함이 없습니다. 실행할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슬퍼할 틈이 없습니다. 주저앉을 수도 없습니다. 제주도의 발전을 멈춰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앞으로도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도의 영광을 위해 함께 뜁시다. 지금까지는 제가 앞에서 끌었지만 이제부터는 뒤에서 밀겠습니다. 신께서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갑시다.

강은 말랐을 때 비로소 그 깊이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제주도를 향한 의로운 그리움이 가문 강에 물길 하나 열어 제주의 강이 도도히 흐르기를 염원합니다. 어느 날 넘실대는 저 시퍼런 제주바다를 순항하여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여생의 희망은 도민 곁에서 울타리 없는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2004년 5월
우   근   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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