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이었을 때 매사에 ‘조심해라’, ‘준비해라’, ‘나쁜 짓 하지 마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그게 싫었다.

늦게 놀다 오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도 왜 늦게 왔느냐, 왜 그런 애들하고 다니느냐 하는 식의 이유를 어른들은 물었다. 나는 대답을 안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그저 놀고 싶으니까 노는데 하는 반발이 생겼다. 놀고 싶으니까 놀다 왔다.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갔다. 자기가 정한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기 때문에 라는 이유만으로는 어른들은 불충분한 모양이었다. 어른들은 이유를 꼭 달아야 한다. 이유를 달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을 닫아버리는데 말이다.

놀랍게도 많은 선생님들이나 부모들은 미지의 세계와 위험을 동일시한다. 그래서 이유를 캐는 모양이다.

어른들은 대체로 쓸데없는 모험을 못하게 한다. 미지의 세계에 접근하지 못하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망설이지 말고, 정확한 대답을 하고, 비슷한 친구와 사귀라고 하는 게 우리들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다. 나는 그런저런 제약의 말을 듣고 한번도 그대로 해본 일이 없다. 그런 주의를 듣고 반성을 하거나 새롭게 각오를 해 본 일도 없다.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신 선생님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셨던 분이 아니라 칭찬해 주신 선생님이셨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듬뿍 칭찬해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국어 선생님이셨다.

어느 날 작문시간에 선생님은 나의 글을 반 아이들 앞에 읽어주시고는 잘 썼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무심코 하신 말씀이셨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부터 매일 노트에 글을 썼다.

다시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썼다.
그리고는 방과 후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선생님은 관심을 갖고 봐 주셨다. 칭찬 한 마디를 꼭 해주셨다. 기뻤다.

나는 그 선생님한테서 사람을 칭찬하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배웠다. 그 훌륭함과 소중함을 알았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일로써 성공을 하고 인생을 즐겁고 유익하게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을 칭찬하는 일이다.

남을 칭찬하면 상대를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즐거워진다. 칭찬은 잠재된 능력이랑 재능을 무한히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칭찬도 중요하지만 엄격하게 책할 것은 해야 알아듣고 반성해서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주의를 받고 야단을 맞는다고 해서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오히려 비판당한 일 때문에 반감을 사거나 증오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람을 바꿀 수 있다든가 사람에게 숨겨진 보석을 알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오직 칭찬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칭찬에 너무도 인색하다. 타인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면 아주 작은 칭찬이나 자신의 장래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 같다.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라는 카네기의 글을 읽고 나는 크게 공감했다.

나에게도 국어 선생님의 작은 칭찬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여고 시절 나는 놀기 좋아하고 공부도 별로였고 막연히 반발심을 갖고 있는 아이였으니까.

국어 선생님의 따뜻한 칭찬 한 마디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지금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