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사격의 1인자이자, '주부 총잡이' 부순희(36·우리은행)는 암을 극복하고 다시 사대(射臺)에 선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제주도선수단에게 가장 많은 메달을 안기기도 했다.

2002년 4월 위의 절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은 부순희는 그 해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25m 권총 개인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길고 긴 사격 인생의 새 출발을 선언했다.

부순희는 제주도선수단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많은 메달을 땄다. 85년 강원체전 여고부 공기권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전국체전 첫 메달을 신고한 후 16년 동안 금 10개·은 12개·동 4개 등 26개 메달을 제주도선수단에 선사했다.

86년 서울체전과 시어머니 상(喪)을 당해 출전을 포기했던 2000년 부산체전을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메달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도선수단에게는 '최고 효녀'인 셈이다.

부순희의 '암과의 악연'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드니 올림픽을 준비하던 부순희에게 어려움이 닥쳤다. 시어머니와 친언니 신희씨가 암 투병 중이었던 것. 스포츠권총에서 메달을 노렸던 부순희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고 같은 해 10월 시어머니를 떠나 보냈다. 2001년 2월에는 언니까지 잃게 된다.

게다가 자신도 2002년 3월 말 충격적인 암 선고를 받았다. 자신의 최대 후견인이었던 시어머니와 사격을 시작한 동기를 제공했던 언니 신희씨가 모두 암으로 유명을 달리 했기에 부순희에게 암 선고는 운명의 장난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진단은 위암 1기. 자신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했던 부산아시안게임의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던 부순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사격은 그런 운명마저도 어쩌지  못하는 '숙명'인가 보다. 부순희는 시어머니와 언니 신희씨가 모두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에 재기의 의욕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다행히 수술경과가 좋아 방사선 치료 없이 식이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처방을 받았다. 부순희는 그 해 8월 제27회 육군 참모총장기 대회에 출전해 힘찬 재기의 날개를 펼쳤다.

1986년 제주여상 2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부순희는 주종목인 스포츠 권총은 물론 공기권총에서 20년 가까이 한국을 대표해온 명사수다. 우리는 199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제46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전극을 펼치면서, 스포츠권총 개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부순희는 당시 본선에서 5백81점으로 부진했었으나 결선에서 1백2.8점을 쏘며 선전, 결선 합계에서 6백83.8으로 1위를 차지했다. 부순희는 단체전에서도 이선복(주택은행) 박정희(국민은행)와 함께 1천7백32점으로 2위를 기록, 은메달을 추가했다.

부순희는 이밖에도 99년 최고 권위의 월드컵 파이널스, 97년 밀라노 월드컵, 98년 뮌헨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 사격의 위상을 드높였다.

부순희는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5m 스포츠 권총 경기로 처음 출전했던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17위에 그친 데 이어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파견 대표선발전에서는 마지막 한 발을 쏘지 못해 탈락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아깝게 4위에 머물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불운은 이어졌다. 그가 갖고 있던 한국기록(592점)은 고사하고 대표선발전 기록(585점)에도 12점이나 모자란 573점에 그쳐 결국 결선무대에 오르는 데도 실패했다.

부순희는 그러나 2001년 충남체전에서 여자 스포츠 권총 결선합계 696.3점으로 비공인 세계신기록(종전 696.3점)을 작성하며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부순희는 그해 한국체육기자연맹에서 시상하는 자황컵 여자 최우수기록상을 수상, 건재함을 과시했다.

부순희는 제주시 출신으로, 제주동교, 제주중앙여중과 제주여상을 거쳐 86년에 한일은행에 스카우트됐다. 현재 남편 최재석씨와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연이은 호된 시련을 딛고 다시 사대에 선 부순희. "투병 중에도 사격을 잊어본 일이 없다"는 그의 불꽃 투혼과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부순희 파이팅!, "아줌마 만세"다.

◇ 프로필
­생년월일 : 1967년 7월15일
- 소속 : 우리은행
- 학력 : 제주동교-제주중앙여중-제주여상
- 가족 : 최재석씨와 1남
- 주요 경력
·제66회 전국체전 여고부 공기권총 단체 우승(1985)
·제16회 멕시코 베니토후아레스 국제사격대회 주니어부 스포츠권총 게인 우승(1987)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 공기권총·스포츠권총 단체전 각 2위(1990)
·제13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스포츠 권총 단체전·개인전 각 2위(1994), 공기권총 단체전 3위
· 아틀랜타 올림픽 여자 스포츠권총 개인 4위(1996)
·제46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여자 스포츠 권총 개인 우승(1994)
·제47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스포츠 권총 단체 2위(1998)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