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일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탑승한 비행기가 오전 6시48분 하네다 공항을 이륙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북일 정상회담에 일본열도는 회담 일정이 발표되던 날부터 휘청거렸다.

국교가 없는 상대국에 수상 자신이 계속 두 번이나 방문하는 것은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환영행사, 정상 오찬회 등 모든 세레모니를 거부하고 일본측은 도시락과 오차까지 지참하고 갔다.

회담 결과, 납치 후 귀국한 세 가족 중 두 가족의 자녀 5명만이 수상 일행과 귀국했다. 소가 히도미 씨 가족 3명은 내일을 거부했다.

그녀의 남편 찰스 재킨스(64) 씨는 미군으로서 한국에 근무할 당시 1965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에 망명했었다.

미국은 그가 일본에 올 경우 ①탈주 ②다른 미군들을 탈주하도록 교시 ③적을 도운 방조 ④불신행위를 장려한 질서 파괴죄로 통일군사재판법에 회부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찰스 재킨스 씨는 자신이 일본에 갈 경우 미국으로 이송된다는 이유를 들고 일본 수상으로서 서면으로 신병 보장한다는 고이즈미 수상의 설득에도 거부했다.

오히려 딸 둘은 자기들은 북한에서 태어났으니까 어머니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고 울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일본 TV방송국들은 앞 다투어 특집방송을 꾸몄으며 신문들은 호외를 뿌리면서 회담의 성공 여부를 분석했으나 납치 가족회는 과격적인 발언 속에 비판 일색이었다.

처음 고이즈미 수상이 방북했을 때 일본이 제출한 납치자 명단 10명 중 8명 사망 2명 미입국에 대한 발표에 대해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 구체적인 재확인을 요구했었다.

이 요구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해결됐다고 주장하다가 그때 조사를 백지화 시켜 재조사한다는 언급에 그치고 고이즈미 수상은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핵 문제는 6개국 회의에서 계속 협의하기로 하고 미사일 문제는 일본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고이즈미 수상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천만달러치의 의약품과 25만 톤의 식량 지원을 약속했다.

당일 귀국한 수상은 밤 10시 반부터 납치 가족들에게 회담 내용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비판을 그치지 않았다.

가족회 대표 요코다 시게루 씨는 예상했던 시나리오 중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고 혹평했고 다른 가족들도, <지난 번 가서 속고 또 이번 가서 속았는데 수상은 프라이드도 없느냐> <납치 가족 5명 데려오기 위해 인도적인 명목하에 막대한 경제지원을 했다>는 등 계속적인 항의가 쏟아졌다.

또 여당은 물론 나카소네 전 수상도 치밀한 준비 없이 서둘러서 정상회담을 추진한 고이즈미 수상을 비난했으며 현직 각료까지 막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왔다면서 불쾌감을 표했다.

그러나 수상 방북을 평가하는 쪽은 코이즈미 수상이니까 북한을 두 번이나 가면서 납치 피해자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서 맞섰으며 국민 여론 조사도 60% 이상이 방북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등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외국에서는 납치 가족의 귀국보다도 김정일 위원장께 일본 수상이 핵 문제에 대해서 직접 폐기를 요구했다는 점을 더 평가했지만 일본의 국내 여론은 핵 문제 보다도 납치 가족 5명이 귀국했다는 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국민정서로 볼 때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한 찬반의 팽팽한 여론 속에 전문가들의 경우에는 실패한 회담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10명의 재조사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특수 환경에 놓여 있는 그들의 신상 파악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며 핵과 미사일 문제는 회담에서 거론만 됐지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는 것과 5명의 납치 가족들을 데려오면서 결국 수상이 가서 신대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제자원을 약속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국민연금으로 인한 국민의 정치 불신과 이번 여름에 있는 참의원 선거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방북이었다는 국내정치용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지만 고이즈미 수상은 카와구치 외무대신을 보낼려고 했지만 북한이 거부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갔다고 설명했다.

어떻든 코이즈미 수상 방북 후 4일이 지나고 있지만 지금도 각종 미디어는 귀국 자녀들의 근황과 회담 성과 여부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톱 뉴스급으로 보도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아무리 외국 관계라고 하지만 납치 가족 십여명으로 인한 국민정서와 감정이 날카롭다.

같은 민족으로서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는 소걸음 보다 더욱 느린 실정이다. 한편 한국의 납북자는 486명이라고 한다. 이 문제는 아직도 빗장이 굳게 잠긴 채 어느 누구도 열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 납치 보도를 매일 접하면서 이산가족과 납북자들을 생각할 때 한없이 착잡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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