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 강아지 눈만큼 보리씨 눈을 뜨면
고뿔 않던 호미들도 밭 머리로 오금 뜨고
비로소
언 콧구멍에 더운 김 도는 보리

밑 뿌린 흔들려도
보릿대만 웃자라서
무좀 발 닳도록 서릿 바람 밟는다만
그래도
깜부기 눈은 이랑마다 베롱베롱.

-현춘식 시집 ‘유배지로 가는 바람'(1995년)에서

<지은이> 현춘식(1946~ ) : 남제주군 남원읍 출생.
제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1990년 ‘현대시조'를 통해 등단.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현재 제주도 문화예술과에 근무.
시조집 ‘유배지로 가는 바람'외.

현춘식은 제주 바람의 시인이다.
그의 첫번째 시집인 ‘유배지로 가는 바람'을 손에 들면 가슴을 통하는 바람 소리가 난다.
위 시에서 처럼 보리 냄새 몰고오는 바람 소리이기도 하고 해원 굿판 펼쳐놓은 제주 역사의 통한의 바람 소리이기도 하다.
그의 바람의 소재는 제주도 전형적인 돌담구멍에서부터 서하늬바람, 샛바람, 영등달 해녀의 바람까지, 그리고 유배지 1번지에서 맞는 ‘세한도'의 바람 등등… 그의 바람은 한을 가지고 있다.
보리 키우는 농부의 바람에서도 어쩐지 한이 서려있음을 감지하면서 ‘깜뿌기 눈 같은' 현 시인의 눈빛을 읽어본다.
글=김용길 시인
그림=문행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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