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유민들의 원한에 찬 눈초리를 견딜 수 없어 옮겨온 한양, 이제 다시 계룡산으로 옮긴다니 무슨 이유인가.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을 위하는 길이 어디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잘 아는 바와 같이 고려 시대의 수도는 개경(지금의 開城)이었다. 이성계는 쿠데타에 성공
하여 임금의 자리에 올랐으나 나라의 이름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분분한 의논 끝에 두 달 후에 정해진 이름이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화령은 영흥부(永興府)였으니 지금의 함흥이었다. 여기는 이성계가 태어난 곳인데 아첨하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그곳을 수도로 삼으라고 건의했던 것이다. 사신은 우려 속에 두 가지 국호를 가지고 명나라 황제에게 재가를 받으러 떠난다.

이런 와중에 태조 이성계는 천도를 서둘렀는데, 나라의 수도를 새로운 곳으로 정한다는
당위성은 있었지만 그보다도 고려의 유민들이 뿜어내는 따갑고 원한에 찬 눈초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 후보지로 당연히 한양이 거론되었다. 그곳은 이미 고려 문종 22년(1068)에 이궁(離宮)을 짓고 남경(南京)이라 했으며, 숙종 9년(1104)에는 남경의 도심 지역에 새 궁궐을 짓기까지 한 지역이었다. 이곳은 도참설(풍수지리설)에 명당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충청도 계룡산이 길지(吉地)라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되어 새 도읍지로 유력시되었다.

명에 갔던 사신은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들고 돌아오고, 계룡산 신도의 역사에 박차가 가해졌다. 이렇듯 공사가 가속화하고 있을 때 경기좌우도의 도관찰사인 하윤(河崙)이 계룡산 정도가 잘못되었음을 고했다. 연유는 그곳이 국토의 남쪽에 치우쳐 있으며, '물이 장생(長生)을 피하여 곧 쇠퇴할 땅'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윤은 당대의 석학인데다 도참설에 능했고, 창업의 실세인 이방원의 계열이었다. 태조가 흔쾌히 가납하여 계룡산은 한참 토목공사가 진행중에 취소되고, 지금 서울인 한양으로 수도가 결정되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대부분 국민들의 우려 가운데 충청도 쪽으로의 천도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아직은 한나라당이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에 약속한 '국민투표'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여지가 있지만 만일 수도를 옮기게 된다면 우선 국민들로서도 무거운 부담을 못 면하게 됐다.

국민투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부 신행정수도 추진위는 지난 15일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충북 음성군, 진천군 일원과 충남 천안시, 충남 천안시, 공주시 일원, 그리고 공주시와 논산시 일원 등 4곳을 선정 발표했다. 이번에 논의되는 공주 지방은 하필 계룡면이 끼어 있어 공교롭게 조선 초기에 한번 취소됐던 지방이기도 하다.

추진위는 전문가 80명으로 평가단을 구성, 21일부터 일주일 간 후보지 별 평가를 거쳐 7월 초 점수를 공개하고, 8월 중 수도 옮길 데를 최종 확정할 방침이라 한다.

서울시의회가 오는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반대 궐기대회를 연다고 하니 그 결과도 기대하거니와 이 시대에 '하윤' 같은 인물은 안 나올 것인지 기대를 가져본다.

민생이 바닥까지 내려간 이 시대에 대통령과 정부에게 한 마디 하고싶은 말은 억지를 부리지 말고, 민주주의 원칙인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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