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의 끝은 어디인가?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유지와 1600원대 돌파라는 갈림길에 섰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0일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일보다 25원 급등한 1506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에 따라 환율은 9일 동안 125원이 급등했고, 지난해 11월25일 이후 약 3달 만에 다시 1500원대로 올라섰다. 원화가 거의 두 달 만에 달러화 대비 15% 가까이 절하된 것이다.

동유럽발 금융위기설과 국내 금융권의 외화 유동성 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1550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산업계는 경기불황과 환율급등이라는 파고를 어떻게 넘을 지 초비상이 걸렸다.

금융계 안팎에서도 환율이 과연 어디까지 치솟을 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환율 상승은 국내 요인과 해외 요인의 복합작용

최근 환율 급상승의 원인은 국내 요인과 해외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2일 "국내 은행들은 조선사들과의 거래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달러 자금을 단기로 조달했고 그 결과 한국의 단기 외채는 짧은 기간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며 국내요인을 지목했다.

단기 외채, 특히 은행의 단기 외채는 국내 조선사들이 해외 수주를 선물환 매도로 헤지하기 시작하면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2003년부터 조선사의 해외 수주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당시 원화 강세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조선사들은 수주 물량에 대해 환 헤지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환 헤지를 위해 조선사들은 2006년 이후 선물환을 강하게 매도했고 이는 거래 상대방인 국내 은행의 선물환 매수 증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국내 은행은 장기 외채는 물론 단기 외채 도입을 크게 늘렸으며, 국내 은행의 주거래 상대였던 외국은행 지점들은 거의 대부분의 달러 자금을 단기로 조달했다.

결국 단기 외채가 짧은 기간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한 것과 이로 인해 외환 시장이 충격에 약해진 것이 원화 약세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결론이다.

경상수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문광 현대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외환보유액은 충분하지만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경상수지 부진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증가하는 것이 보통이고, 수출이 증가하면 원화 수요 증가로 환율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재 환율이 상승하는데도 오히려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라 환율을 하락시킬 만한 계기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요인도 분석했다. 미국 내 일부 부실 은행의 처리를 놓고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이 재점화되고 있다는 점과 최근 동유럽 국가들의 통화 가치 폭락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는 상황을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 미국 재무부가 금융안정계획을 발표했으나 국제 금융 시장은 구제 계획의 실효성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크리스토퍼 도드 미 상원 금융위원장은 20일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대한 '일시 국유화 필요' 발언을 하는 등 미국 내 경제 동향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동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한국 외환시장을 흔들고 있다.

연초부터 폴란드 즐로티화가 달러화 대비 30% 이상 가치가 하락하는 등 헝가리, 러시아, 체코 등의 환율이 급등했다. 이들 국가의 주가는 지난해 고점에 비해 최저 수준까지 급락하고 있다.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한국의 그것보다 더 커지고 외환보유액은 줄어들면서 대외 부채 상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늘려왔던 서유럽 은행들도 동유럽 외환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서유럽 은행들은 동유럽과 한국에 동시에 투자를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유럽에서 입은 손실을 벌충하는 차원에서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빼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2007년 말 기준으로 국내 외국인 채권 투자 금액은 총 1366억 달러이며, 이 중에서 유럽연합(EU) 국가 자금은 746억 달러로 무려 54.6%였다.

이밖에 주식투자 자금의 30.8%, 직접투자 자금의 45.5%, 대출을 포함한 기타 투자의 24.1%가 EU 국가들의 자금이라는 집계도 나왔다.

이들 자금의 일부가 빠져 나가면서 원화를 달러화로 대거 바꾼다면 환율이 추가로 더 상승할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유럽 은행에서 빌려온 국내 외채 규모는 2008년 3분기 기준으로 2000억 달러에 달한다"며 "따라서 유럽 은행의 신용경색이 심화될수록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 차입 여건이 어려워지고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는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우증권 역시 "지난 주 원/달러 환율이 1500선을 넘어선 직후 주식시장의 하락 기울기는 더 가팔라졌다. 이는 그만큼 환율 1500원선 지지 기대감이 컸다는 방증"이라며 환율이 1500원선 돌파 이후에도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 1600원대까지? 아니면 1400원대 복귀? 정부도 대응 나선다

그러나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업계 일각에서는 1600원을 향한 급등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지만 외환당국의 시장 안정 노력 등으로 1500원대에서 오름세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1600원대 돌파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봤다.

다른 관계자는 "이제 막 1500원대에 돌입했고, 전문가들 역시 예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월요일(23일)부터 다시 1400원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환율이 지난해 가을과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이는 불안심리로 인해 촉발된 것이고 앞으로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외환당국 역시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태세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는 "2000억 달러 수준인 외환보유액을 활용해서라도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환율의 비정상적인 상승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그동안 외환당국은 외환보유액이 2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오면 미래 위험에 대한 대응 능력이 상실된다는 지적을 의식해 보유액을 통한 시장개입에 신중을 기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 외화차입금 350억 달러 중 100억 달러가 다음 달로 몰려있는 상황이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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