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박사'가 된 허유승씨.
장애와 씨름하는 아들이 못내 안스러웠던 아버지가 만학(晩學)의 길에 접어든지 10여년만에 '장애박사'가 됐다.

제주 대기고등학교 국어교사인 허유승씨(52)는 최근 대구대학교에서 특수교육학 분야 문학박사 학위(정서.행동장애 전공)를 취득했다. 

다소 긴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은 '비디오를 이용한 활동계획 프로그램이 자폐성 장애청소년의 문제행동과 선택하기 기술에 미치는 효과'. 장애를 지닌 본인이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자신의 문제행동에 반응을 보임으로써 문제행동을 줄여나가도록 하는 실험과 그 결과를 다뤘다.

허 씨가 논문에서 주목한 것은, 흔히 장애아에게 "이렇게 하라" 혹은 "이렇게 하지말라"고 할 때 정작 당사자들은 '이렇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데서 출발했다.

본인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문제 행동을 삽입한 뒤 컴퓨터 모니터에 문제행동이 나타날 때마다 클릭하도록 함으로써 문제행동에 대한 인지도를 체크하고 실생활에서 문제행동이 감소하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실험'은 성공을 거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행동이 실제로 줄어든다는 값진 결과를 얻은 것이다.

허 씨가 엄밀히 말해, 전공과 무관한 이 분야 공부를 시작한 것은 교단에 선지 8년만인 1997년. 자폐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큰 아들(22)이 꼭 열 살 되던 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장애를 만나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곁에서 지켜보는 아버지로서 가슴이 쓰라렸다.

방학을 이용해 계절학기를 다닌 끝에 2000년 석사학위를 땄고, 잠시 텀을 둔 뒤 2006년 공부를 재개했다. 박사과정은 일주일에 한번 먼길을 오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설상가상 논문 작성이 끝나가던 지난해 12월엔 지병을 앓던 동생마저 잃어 심적 고통이 배가됐다.

다행히 연구는 결실을 맺었고, 10여년 동안 터득한 지식은 그때그때 아들의 장애를 극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허 씨의 눈물겨운 노력은 큰 아들을 어엿한 교사로 성장시켰다. 올 2월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아들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 제주시내 한 재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녀 교육에 열정적이었지만, 그도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자폐성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자녀를 내놓기 두려워 하는 것처럼, 자신도 마음이 닫혀있었다고 고백했다.

닫힌 마음은 아들의 학교에서 부모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일부러 아들을 일반 학교에 보냈다. 비장애아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도록 해 자신처럼 마음을 걸어잠그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심사였다. 초등학교 땐 집을 놔두고 단 둘이서 학교 근처에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허 씨는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열정만 갖고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 공부를 한게 된 동기도 특히, 장애분야 교육종사자라면 누구보다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

"박사학위는 운전면허증과 같다고 봅니다. 면허증을 취득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운전이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얻은 지식을 꼭 필요한 곳에, 선한 일에 쓰도록 노력해야죠" <제주투데이>

<고상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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