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근대문학관'은 도쿄도 흑목구(黑目區)의 한 공원 안에 있다. 본디 대지주였던 전전이위(前田利爲)의 저택으로 한때는 미 극동군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된 바도 있었으나 1967년 4월 근대문학관으로 개설되어 현재는 동경도 교육위원회 소관의 사회교육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1천5백33평방미터의 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건평 2천9백92평방미터의 이 건물에는 전시실 11개와 1개의 학습실, 또 2개의 집회실과 5개의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건물의 구조도 그렇거니와 전시실 내부의 전시 품목들이 시대별, 작가별로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어 일본 근대문학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작가와 문학평론가, 교수, 아동문학가 등 12명으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일본 내 근대문학 관계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 전시하고, 학술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다.

일본 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 초고를 볼 수 있었으며, 장편서사시의 원고를 전시해 놓은 코너도 있어 거기서 필자 일행은 우리 시인 노천명의 실명소설이 오래 전에 일본에서 쓰여졌던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자료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작가들에겐 큰 자극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박물관에서 걸어서 7~8분 거리에 야나기 쇼에스, 유종렬(柳宗悅)의 <일본민예관 >이 들어서 있다. 이 사람은 잘 알려진 대로 우리 나라의 도자기에 반해서 재산을 다 내놓고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물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 <조선의 미(美) > 등 한국에 관한 저서도 여러 권 낸 바 있어 우리로서도 낯익은 이름이다. 그는 "한국의 도자기에는 슬픔과 원한이스며있다"는 주장을 폈다가 한국 학자들의 반박을 받기도 했다.

주택가 길옆에 자리잡은 <일본민예관>은 유종열이 살던 집을 전시관으로 바꾼 것이다.

일본 민예관이라고 하지만 고려와 조선의 자기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필자는 1993년 1월 이 박물관들을 돌아보면서, 특히 조선 수적(水滴)과 각수적(角水滴)에 시선이 뺏기고 말았다. 홍자색 빛깔의 바탕에 기러기 두 마리가 입맞추는 모습이 새겨진 이 수적은 가히 국보급이었다.

필자가 여기서 오래 전 일본 방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내놓는 것은 제주에도 이제 문학관이 하나쯤 들어설 때가 되었는데, 행정 관료나 도의원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하고, 말을 안 꺼내는 것이다. 도지사 관사나, 또 요새 말썽이 일고있는 다른 건물만 해도 모두 국민의 세금을 들여 지어놓은 것들인데, 개인에게 빌려주거나 그냥 내버려 놀고 있어도 '문화의 세기'라는 이 시점에 아무도 문화적 차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주문학관에는 제주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수도권 지역 제주 출신 작가들과 전국의 유명 작가들 작품들까지 수집, 전시하고, 관광객들이 찾아왔을 때 이 고장의 문학과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면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것인가.

지금 일본의 문화를 부러워하게 되었지만 사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일으킬 때만 해도 그들은 우리의 문화재가 욕심나서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 아닌가. 그것이 이제 역수입해야 할 판이니 참으로 딱하다. 어느 광고의 구절을 빌어 말하거니와 "문화에 투자해 보시라. 곧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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