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시립 이중섭미술관이 이 달 들어 특별기획전 '이중섭에서 백남준까지'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올해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주말에 이 전시를 가보고 나서 '이제 서귀포가 전시관다운 전시관 하나 갖게 됐구나' 하고 안도가 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번 전시는 서울의 현대미술관 박명자 관장이 그동안 모아온 우리 나라 근.현대 유명작가의 작품 54점을 기증하면서 비롯됐다. 몇 해 전에 역시 서울 소재 가나아트가 이중섭의 그림을 비롯하여 그의 친구들 작품을 기증한데 이어서 서귀포시는 대단한 경사를 맞은 셈이다.

빗발치듯하는 일부 화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 이중섭 거리를 지정하고, 또 미술관을 지을 때만해도, 이 일을 주도하는 사람들조차 이중섭미술관이 오늘처럼 빠른 시일 안에 제 모습을 갖추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미술관의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예술의 길을 제대로 걸어간 한 사람과의 인연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게 된다.

사실 그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멜라져가는 초가 한 채와, 천장에 60촉 백열전구가 뎅그러니 매달려있던 한 평정도의 방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집에서 갖고 있던 6.25 전쟁시기, '어두운 시대'의 초상화 몇 점.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피난 가옥의 복원은 물론, 주변 정비와 더구나 이제 전국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우리 전 시대의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그림들. 그 충실한 예술품들을 우리 품안에 품게 된 것이다.

1차로 들어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작가 김환기의 작품과 남관의 '태고의 형상'등을 비롯하여 박수근, 박고석 등 익숙한 이름들을 모두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2차로 김환기와 신화적 사랑을 한 그의 아내 박래현의 작품들과,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의 작품들, 반벙어리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혼신의 정열로 작업을 하다가 이제 고인이 된 김기창의 올빼미 그림과, 허소치와 남농 2대의 산수화, 그리고 마침내는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바로 지금, 혹은 우리 전 시대에 활발하게 화필을 휘둘렀던 우리 화단의 대가들 그림을 한 자리에서 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로써 서귀포는 한 단계 승화된 예술세계를 날마다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서귀포 뿐 아니라 온 제주도 사람들이 예술적 성과로서 이제 분명한 모델을 제시받게 되었다. 예술의 시초가 어차피 '모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때 제대로 된 텍스트를 갖게 된 것과, 제대로 배운 지도자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는 이 두 가지야말로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지름길이다.

여기, 이 한 장소로부터 제주 예술의 새로운 정기를 받게 되고, 그들 선각들 각고의 노력을 전수 받을 수 있다면 이에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아울러 서귀포시가 해야 할 일은 돈으로 값을 칠 수 없는 이 작품들을 선뜻 할애해준 은인과 또 그 일을 주선해준 분에게도 결코 보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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