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 개원은 16년만의 여소야대 정국의 출현, 젊은 초선의원(국회의원 정수의 63%인 187명)의 대거당선으로 대대적인 세대교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국회입성 등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인터넷의 힘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인터넷의 위력은 유감없이 입증되었다. 특히 2002 대선과 여중생 사망사건 촛불시위, 탄핵반대 등 여론의 향배를 결정한 넷심(net 心)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대규모 유세와 합동연설이 선거법 개정으로 사라지면서 후보자와 유권자가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인터넷의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었고,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을 PR하고, 정책과 공약을 내거는 등 인테넷에 상당부분을 의존했다. 또한 인터넷은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문화 조성, 젊은 층의 투표호소로 투표율 높이기 등에도 일조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형성이 영향력을 확대해가자 17대 국회의원들의 '넷심'잡기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들이 찾아낸 네티즌 사로잡기의 방법은 최근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미니홈피’와 ‘블로그’ 등의 1인 1미디어이다.

블로그는 Web(웹)과 Log(일지)의 합성어로 자신의 생각, 의견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1인용 미디어를 뜻한다.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주위 사람들과의 또 다른 연락수단이며, 각자의 삶을 표현하는 새로운 ‘미디어’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요즘 여의도는 그야말로 블로그의 열풍이다. 호랑이를 잡기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듯 젊은이들과 가까워지려면 무엇보다 그들의 ‘놀이터’를 장악해야 한다.

현재 많은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미니홈이나 블로그를 개설, 운영하고 있으며, 형식만 갖춘 홈페이지 차원을 넘어 미니홈, 블로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꾸미며 ‘네티즌의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 앞다퉈 ‘싸이질’에 빠져들고 있다.

#두 번 대선에서 실패한 한나라당, 사이버 대약진 운동

특히 한나라당은 지난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연패,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자 ‘사이버 전쟁’ 완패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사이버 대약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당 차원에서 인터넷스타 국회의원 10명을 키울 방침으로 2주 동안 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마인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사이버전의 선두주자로는 단연 박근혜 대표를 꼽을 수 있다. 그의 미니홈피는 개설 5개월만에 15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자신의 미니홈피 100만 번째 방문자와 특별한 데이트를 약속하며 네티즌 방문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박 대표는 미니홈피에 열흘에 한번정도 개인 일기를 올리고 있으며, 사진첩에는 육영수 여사와 함께했던 어린시절과 퍼스트레이디로 살았던 20대 시절, 현재 자신의 사진들을 담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비판의 글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 박 대표를 응원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어있으며, 네티즌들은 사진첩이나 게시판에 “1등으로 답글을 달게 됐어요. 기뻐요”라고 열광한다.

박대표는 지난 21일에는 자신 자택 오픈하우스에서 “미니홈페이지를 통한 1촌이 1000명도 넘는다"며 “나처럼 친척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특히 박대표가 신임 당대표로 당선된 후에는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박대표와 ‘1촌(寸) 맺기'열풍이 불고 있다. 한선교, 정병국의원은 박대표와 1촌을 맺었고, 이규택 최고위원과 정병국 의원도 박대표와 1촌맺기 러브콜을 보내며 대기 상태다.

박 대표와 함께 당내 대권주자인 이명박 시장도 지난 5월초 미니홈피를 개설해 화제에 올랐다. 미니홈피 주소의 ‘MBtious’는 이 시장의 이니셜(MB)과 ‘대망을 품은’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ambitious’를 합성한 의미심장한 것으로 2007년 대선에 대한 야망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장의 미니홈피는 손녀와 찍은 사진 등 가족사진과 현대그룹 재직 시절의 일화 등이 소개되어있으며, 한 달여 동안 총 방문객이 7000여명에 이르고 방명록 게시물도 하루 10여건이 올라오는 등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 교통개편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서울시 봉헌’파문으로 이 시장의 미니홈피에는 ‘안티 이명박’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현재 방문객이 20만명을 넘어선 이 시장의 미니홈피는 네티즌들이 비난 글로 폭격을 가해 접속불능상태에 빠뜨리기도 하여,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박 대표와 달리 고개 숙인 대권후보가 되어버렸다.

한나라당의 대표 논객인 전여옥 대변인은 최근 ‘OK talktalk(옥톡톡)’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정치활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나 정치인, 특히 당 대변인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네티즌에게 소개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를 애용하는 전 대변인은 노트에 휘갈겨 쓴 글을 그대로 스캔해 블로그에 올려 네티즌들에게 친필 편지를 읽는 친근감을 느끼도록 했다.

한선교 대변인은 미니홈피에 국회 탐방기를 올렸다. 한 대변인은 의원회관 남성사우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국회의원이 이용하는 곳이라 삐까뻔쩍일 줄 알았는데 옷장도 삐거덕거리고, 최신 헬스기구도 없어 동네 목욕탕보다 못하다”라는 재미있는 소감을 올려놓기도 했다.

박 대표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하는 당내 비주류 3선3인방인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의원도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으며, 환갑을 훌쩍 넘긴 김덕룡 원내대표도 최근 미니홈피를 오픈 했다.

또한 서울 강남갑의 이종구 의원은 ‘블로그 이렇게 하라’는 제목으로 성공적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비법을 각 의원들에게 소개, ‘한나라당 블로그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네티즌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의원들에게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할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넷심을 파고들었던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와 블로그로…

17대 총선에서 탄핵 정국으로 넷심의 가장 큰 수혜를 입었던 열린우리당의 경우 한나라당에 비해 블로그 바람은 덜한 편이다. 그러나 기존의 공식 홈페이지를 꾸준히 관리하고,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온라인 토론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한나라당이 싸이월드와 네이버를 중심으로 블로그 열풍을 확대해가고 있다면 열린우리당은 각자의 개성과 칼라에 맞는 블로그 사이트를 선택하여 관리하거나 작업 중에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미니홈피가 가장 인기가 높다. 그동안 대중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장관의 미니홈피에는 김 장관의 사생활과 가족사랑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엿볼수 있으며, “의원님 시집보내주세요”, “1촌이상 더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거 아시죠~ 자주 들를께요”등의 친근한 내용들이 많다.

김 장관은 지난달 미니홈피에 “대학가 춤단속은 반문화적”이라고 꼬집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이번 단속을 보며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시절에 있었던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이 떠올랐다”며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정말 '꼰대'가 되어 우리 아들딸들의 새로운 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라고 ‘꼰대(늙은 사람을 칭하는 속어) 불가론’을 펼치기도 했다.

김 장관은 미니홈피에서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의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밝히고 있다.

반면 당내 또 다른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공식 홈페이지를 분기별로 개편해가며 홈페이지에 애정을 쏟고 있으며, 블로그인 미니홈피는 시들해져있지만 ‘다음 카페’를 중심으로 회원들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다.

초선의원인 노웅래 의원의 미니홈피에는 가족과 나눈 대화 내용을 옮겨 국회의원도 평범하고 소탈한 이웃임을 표현하고 있다. 어린 아들·딸이 비뚤비뚤 쓴 글을 스캔해 올린 편지에는 “아빠가 (출마하기 위해)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셔서 과연 우리 가족은 앞으로 무얼 먹고 살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아빠를 믿어요.”라는 천진한 소감이 적혀 있다. 노 의원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와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글을 올렸다.

늘 이슈를 생산해내는 유시민 의원의 개인 홈페이지는 언제나 네티즌들로 북적댄다. 유 의원의 홈페이지는 특정사안이 일어날 때 마다 그 사안에 대해 찬반이 공존하며 활발한 온라인 토론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유게시판에 등록되는 게시물 수가 하루 평균 200개가 넘으며 중요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유시민의 아침편지’는 조회수가 많은 경우 6만을 육박하기도 한다.

#인터넷 제1당을 자부하는 민노당, 블로그 준비중

각 정당들 중 홈페이지 방문자가 가장 많다면 ‘인터넷 제1당’을 자부하는 민노당 의원들의 경우 4·15총선이후 개인 홈페이지의 제작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홈페이지를 새 단장하거나 블로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천영세 대표는 블로그 콘텐츠를 좀더 일상적이고 친근하게 꾸며 네티즌의 참여를 늘린다는 목표하에 네이버에 블로그를 오픈해 운영중에 있으며, 교육개혁을 부르짖는 최순영 의원은 블로그에 ‘순영편지’라는 콘텐츠를 통해 ‘어눌한 컴퓨터 실력으로 블로그를 만들려고 하니 어려운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라고 토로하며 네티즌들에게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난중일기’라는 비장한 제목으로 홈페이지를 열었던 노회찬 의원은 홈페이지 명칭을 ‘의정일기’로 바꿔 자신의 의정활동을 충실히 전달하고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돈 안드는 블로그, 장식은 사이버 머니로…

e-politics의 가장 큰 장점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과 더불어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였던 금권정치를 타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17대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공식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공식 홈페이지의 경우에도 어떻게 제작하느냐에 따라 적게는 300만∼500만원, 많게는 1000만∼2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국회의원 홈페이지 제작업체들은 전한다.

물론 콘텐츠나 프로그램 개발비용은 별도이며, 설치비용 외에 매달 관리비는 도메인주소 사용료(호스팅비용) 10만원을 포함해 매달 30만∼40만원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경우 설치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다. 그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꾸미고 장식하는데 필요한 사이버머니만 있으면 되는데 사이버머니의 경우 홈페이지 운영비용에 비교하다면 몇 십분의 1도 안되는 수준이다.

특히 미니홈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경우는 네티즌들로부터 미니홈피 스킨과 음악을 선물 받고, ‘도토리(1개당 100원)’라고 불리우는 사이버머니가 쌓여 있어 아예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한다.

#우려되는 인터넷 포퓰리즘

인터넷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블로그의 열풍, 현재 블로그를 개설해 운영중인 정치인은 10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블로그 열풍이 자칫 인터넷 포퓰리즘의 폐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만능주의에 빠져 일방적 여론몰이와 여론재판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네티즌들의 집단화와 권력화를 부추겨 정치인들의 홍보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정당이라는 제도화된 채널링의 수단 없이도 직접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할 수 있게되었고,또 사이버상에서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과거 국민들이 정책결정의 밖에서 맴돌았던 정치 패러다임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젊은 표심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미지를 정립해가기 위해 오늘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고 장식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하고 세련된 홈페이지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진솔한 모습이자 그들과의 솔직하고 편한 대화일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블로그를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다.

[기사제휴=이민경 min2077@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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