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제임스·본드’씨리즈에 ‘소련에서 애인과 함께’라는 게 있다.

그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러시아인인 이중 스파이에게 조롱하듯 “생선요리에 레드 와인이라구? 이상한 녀석 다 보겠네.”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 육류에는 레드와인이라고 하는 데, 왜 그럴까.
그 의문에 대답하기 전에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의 차이에 대해 얘기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간단히 얘기해서 화이트와인은 포도를 짜서 그 과즙만을 발효시킨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해 레드와인은 포도의 껍질과 씨를 모두 함께 담아서 발효시킨 것이다. ‘모두 함께 담갔다’는 점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의 커다란 차이다.

그러면 껍질과 씨에서는 탄닌이라고 불리는 떫고 쓴맛이 나온다.

다시 말해서 레드와인은 화이트와인의 요소에 ‘색소’, ‘떫은 맛’, ‘쓴맛’, ‘향기’가 첨가된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화이트와인은 이들의 특징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화이트와인의 결정적인 것은 무엇인가. 산미와 단맛의 밸런스이다.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선요리같이 담백한 맛을 돋보이게 하려면 화이트와인의 산미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 육류요리의 맛을 돋보이게 하려면 레드와인의 떫은맛이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재료랑 조리법에 따라 오히려 화이트와인이 어울리는 육류요리가 있고, 레드와인이 어울리는 생선요리가 당연히 나올 수 있다.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이 맛이 다름을 안다면 육류요리에는 레드와인,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이라는 고정관념에 매일 필요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요리와 함께 즐긴다면 더 풍요로운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레드와인을 좋아한다.

그러나 화이트와인을 꼽으라면 단연 ‘샤브리(chablis)’다.

‘샤브리’는 프랑스, 아니 지금은 세계를 대표하는 드라이한 맛의 와인이다.

드라이한 맛을 설명한다면 청사과의 산미가 나도는 신선한 타입의 쌉살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산미가 꽤 억제되어 있고 당분이 전혀 없지만 다른 성분과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다.

‘샤브리’의 특징은 ‘부싯돌의 향기’랄까 ‘미네랄의 향기’가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샤브리’를 드라이한 맛이라고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같은 화이트와인의 드라이한 맛이라도 향기가 서양배나 복숭아의 향기가 나는 와인은 향 때문에 단맛의 와인이라고 느끼기 쉽듯이.

‘샤브리’는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브르고뉴지방에 있는 포도밭에서 재배되어서인지 산미가 많다. 그 산이 숙성을 더디게 하고 미네랄의 향기를 갖게하고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숙성시켜 가는 맛과 향기. 그게 매력이다.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 나는 ‘샤브리’를 서너병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리고 ‘샤브리’를 내 놓는 날은 마다하지 않고 식탁 꾸미는데 신경을 쓴다. 테이블 클로스는 어떤 색으로 할까. 어떤 꽃을 꽂을까. 음악은? 하고.

어떻게 하면 이 ‘샤브리’를 친구들과 가장 즐길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게 즐겁다.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샤브리를 꺼내고 헬렌·메릴의 ‘뷰티플 러브’를 배경음악으로 깔면, 친구들도 나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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