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나무숲.
밤새 누가 꽃길을 만들었을까나
연붉은 솔꽃이 사색의 숲길을 열여 놓고 기다린다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마다 숲의 향기로 고즈넉한 길
그 길 위에 서면 누구든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된다
길을 걷는 것은 진실한 삶에 서 있는 것.

▲ 사려니숲길.
신록으로 물든 숲,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이며 피로에 쌓였던 마음을 보듬어준다. 숲은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 찌들었던 마음을 어루만지며 어머니의 품처럼 품어 안는다.

나무와 풀꽃 이름을 몰라도 좋다. 그저 초록으로 물든 자연림으로 우거진 숲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삶에 서 있는 것이다. 

17일 사려니 숲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사려니숲길은 5.16도로 교래리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거쳐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숲길이다.

사려니숲길은 저마다 체력에 맞게 걸을 수 있다. 굳이 15km를 완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산길을 좋아하는 이라면 15km를 완주해도 좋다. 조금은 지루할 듯한 숲, 그러나 그 지루함을 달래 수 있는  것은 다양한 나무들과의 만남에 있다.

좋은 숲은 활엽수, 침엽수, 상록수와 큰 키 나무, 작은 나무 등이 어우러져 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숲을 말한다.

이처럼 사려니 숲은 졸참나무와 서어나무를 비롯해 때죽나무, 산딸나무 등과 같이 낙엽활엽수림과 삼나무, 붉가시나무 등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숲길이다.

사려니숲길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나는 하나의 나무가 되기도 하고  땅에 엎드린 채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풀꽃이 된다.

▲ '사려니숲길 걷기행사'에 참가한 제주시 삼도2동에 사는 주부.
17일 '사려니숲길 걷기행사'에 참가한 제주시 삼도2동에 사는 주부는 "제주에 사는 것만으로 행복 그 자체"라며 "무엇보다 사려니숲길을 걷게 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단, 15km의 사려니숲길에 현재 위치와 거리 설명 표지판이  덜 설치 돼 아쉽다고 덧붙였다.

또 삼양2동 우성수(58세)씨는 "사려니 숲길은 제주의 환상적인 숲길"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사려니숲길은 그 동안에 베일에 가렸던 난대림연구소 한남시험림의 숲길을 개방하는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물찻오름을 거쳐 월든 코스를 지나면 한남시험림의 숲길에 들어선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숲,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한 숲 속에는 제주의 옛 산림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진미가 숨어 있다.

▲ 숯가마터.
서어나무숲길을 지나 서중천을 지나면 더불어 숲에 들어선다. 인간과 숲과 더불어 살았던 숲에는 '표고재배사'와 '숯가마터' 흔적이 남아 제주인이 삶을 엿 볼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기도 하다.

사려니 숲길에는 은은한 종소리로 마음을 사로잡는 나무가 있다면, 자연을 사랑하는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어야 제맛이 난다.

초록 잎 사이로 주렁주렁 종처럼 매달린 하얀 꽃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쪽동백나무인지, 때죽나무인지 참 헷갈리는 나무다. 이 둘은 꽃도 비슷하고 수피도 비슷한 나무다.

쪽동백나무는 때죽나무 잎에 비해 훨씬 큰 타원형이며 꽃은 총상꽃차례로 달리는 점과 잎이 나기 전에는 벌레들로부터 새순을 보호하기 위해 소지가 죽은 나무처럼 벗겨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숲해설가는 설명했다.

바람에 살랑이는 초록 손 사이로 하얀 종소리를 땡그랑거리며 흔들어대는 쪽동백나무의 향기에 매료되는 사려니 숲길에는  '나도밤나무'도 제법 보인다.

"나도밤나무에도 밤이 열리나요?" 질문했더니 밤나무는 참나무과지만, 나도밤나무는 나도밤나무과로 밤이 열리지 않는 가짜 밤나무라는 의미로 '나도'라는 접두사가 붙였다고 숲해설가는 말했다.

나도밤나무 잎의 모양이 잎맥과 잎 가장자리에 달려 있는 뾰족한 톱니가 밤나무 잎과 비슷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숲해설가는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사려니 숲길

아득한 옛날 제주 들녘을 호령하던
테우리들과 사농바치들이 숲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을 화전민들과 숯을 굽는 사람
그리고 표고버섯을 따는 사람들이 걸었습니다.

한라산 맑은 물도 걸었고 노루 오소리도 걸었고
휘파람새도 걸었습니다.

그 길을 아이들도 걸어가고 어른들도 걸어갑니다.
졸참나무도 서어나무도 함께 걸어갑니다.

우리는 그 길을
사려니 숲길이라 부르며 걸어갑니다.

 -제주생태교육연구소 현원학 소장-

노루의 컹컹거리는 울음소리에도 나무는 그저 제 할 일을 하느라 푸르름으로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마련한다. 마치 테우리들과 사냥꾼이 숲길을 걸었던 것처럼 사려니숲길을 우리도 따라 걷는다.

바람결에 흔들어대는 초록 손, 그 흔들림에 이끌려  숯을 굽는 사람과 표고버섯을 따는 사람들이 걸었던 것처럼 제주휘파람새가 지저귀며 노래하는 사려니숲길을 마냥 걸었다.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는 숲이 내뱉은 초록의 언어는 현대인들에게 풀향으로 곱게 물들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원천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숲길을 걷는다. <제주투데이>

<문춘자 기자 /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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