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그림을 부모 나름대로 좋고 나쁨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시기를 놓치거나 잘된 그림만 강요하면 자신의 표현언어를 형성하지 못하여, 남의 그림을 모방하는 습관만 늘게 됩니다.

서툰 그림이더라도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엄마의 인내력은 나중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비록 그림이 다른 어린이들보다 세련되지 못할지라도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여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그림이 피카소나 잭슨폴록과 같은 예술작품처럼 난해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지러운 낙서와 도형들을 결합시켜보는 과정에서 집, 나무, 사람 등을 그리는 법을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루돌프 아른하임의 말처럼 "수고로운 발명"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세 이전 시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지나버린 어린이들은 자발적인 표현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의 지나친 욕심은 다른 친구의 잘된 그림에 의존하는 습관을 길러주게 된답니다. 표현이 더딘 어린이에게 부모를 만족하게 하는 그림을 그려내길 바란다면 일말의 표현 의지까지 거세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엄마가 선호하는 미술학습은 요행과 기술만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어렵게 형성된 표현언어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주체감이라 하겠습니다. 누가 옆에서 강요하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은 자발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심어집니다.

자녀의 반복적인 표현일지라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결코 서로 다른 의미를 발견할 것입니다. 이 때 조금 만한 변화에도 감동과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대해 주는 엄마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바로 자신의 표현을 신중히 생각하고 타인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미술표현의 궁극적인 목표는 표현기술보다 더 소중한 상상력의 발달에 있기 때문입니다.

* 박기호 님은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진흥팀 연구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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