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그 한가위가 엊그제 지나갔다. 그러나 연휴 내내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려서 보름달은 고사하고 맑고 높은 하늘도 보지 못하고 말았으니 날씨도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추억 속의 한가위는 마냥 즐겁고, 신나는 것이었다. 낮 동안에는 친척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곤밥과 떡으로 '음복'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가운데도 언제면 저물어 크고 둥근 달을 보게 될 것이냐 그것이 못내 기다려졌다.

우리가 달맞이를 위해 올라가는 곳은 마을 뒤 나직하게 앉아있는 고근산(孤根山:396m). 음식을 많이 먹어서 잔뜩 부른 배에 억새들 사이 꾸불꾸불한 조도(鳥道)를 따라 기어오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언제나 산정까지 올라가 보면 허연 달은 어느새 공중에 서너 발이나 올라와 있곤 했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홍시를 닮은 달을 기대했던 우리들에게 그것은 맥빠지는 일이었다.

내려올 때 짓궂은 아이들은 먼저 내려오며 길 양쪽의 억새들을 마주 묶어 내버리면 그것이 덫이 되어서 어둠 속에 비탈길을 내려오던 아이들이 줄줄이 넘어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러나 그 산은 레일의 받침목들을 가져다 계단까지 놨지만 이제 아이들은 아무도 달을 보기 위해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 아이들은 어쩌면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달을 보고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한가위 무렵 둥근 달은 나라 안의 온갖 어려움 탓인지 옛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온 식구가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밥을 먹던 도고리(통나무의 가운데를 파낸 운두가 낮은 그릇)를 연상시켰다. 거기 밥이나 범벅을 퍼놓고 식사를 하시다가 어머니는 크게 한 숟갈 떠서 아버지의 국그릇에 담아주고는 "그만 뒤로 물러 앉읍서"하고 채근하셨다. 어른이 된 다음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호랑이 같은 흉년에 온 가족이 살아 남는 지혜였던 것이다.

경제 한파로 다들 어려워서 죽겠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가만히 통계를 살펴보면 어디나 이 세상 인구의 반은 배 터져서 죽고, 반은 굶주려서 죽게 생겼다. 이런 때일수록 옛날 흉년을 넘기던 여인들의 지혜를 발휘할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조류독감, 광우병, 사스 같은 현대 병에 대하여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인간의 음식문화가 부메랑이 되어서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문명 비평가 제레미 리프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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