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는가/ 무자년 그날/ 한라의 영봉에 봉화가 오르고/ 삼백예순 봉우리로 번지던/ 4월의 희망을/ 자유의 굶주림으로/ 해방조국의 그날 위해/ 불길이 가 닿는 곳마다 일어서던 순박한 섬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중략)’

90년 4월 제주청년문학회 시분과 회원인 김영희·김정주·오승국씨 등 회원 10여명은 ‘4·3’의 아픔으로 얼룩진 제주시 용강마을을 둘러보고 공동작업을 통해 ‘용강마을, 그 피어린 세월’이란 장시를 토해냈다.

공동창작이라 함은 형상사유의 운용과 구상을 공동으로 해야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되는 말이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문화운동의 한 흐름으로서 최근 보편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공동창작 작업은 인식교양적 기능과 조직동원적 역할을 갖춘 문예실천의 구체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이것이 조직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조직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지역의 경우, 집단의 결집된 힘으로서 공동창작의 연원을 들춰보면 어림잡아 극단 ‘수눌음’활동시기(1980~83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 싶다.

‘수눌음’은 대본집필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토의해 한 사람이 대표가 돼 집필하는 형태의 창작양식을 도입, ‘좀녀풀이', ‘태손땅’등의 작품을 통해 제주지역의 삶의 공동문제를 다뤄나갔다.

이는 특히 87년 ‘6월’이후 공동창작에 대한 개념 정립과 조직적 대응이 구체화되면서 보다 면밀한 양상을 띠게 된다.

‘치열한 노동에 맞먹는 건강한 대학문화 창조의 선봉’임을 들고 나온 대학문학 동아리 ‘신세대’는 87년 10월 ‘문학 한마당’행사를 통해 ‘또 다시 불꽃으로’를 비롯, 3편의 공동창작 시를 내놓아 시 부문에 있어 공동창작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제주문화운동협의회 산하 문학패 제주청년문학회는 결성 이듬해인 88년, 그들의 첫 공동창작시인 ‘노동해방이여, 섬의 공동체여’를 비롯해 ‘한라산 돌오름에 엉겅퀴 꽃은 피었는데', ‘우리들의 학교 우리들의 교실'(89년), ‘용강마을 그 피어린 세월', ‘내 땅 딛고 굳게 서서’ 등의 작품을 발표,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91년에는 ‘4·3 민족문학제’를 통해 소설분과 김정숙·김명하·문희숙씨가 공동 참여, 공동창작의 소설인 중편 ‘아버지의 땅’을 내놓았다.

극단 ‘수눌음’의 맥을 잇고 있는 놀이패 ‘한라산’도 대본 집필에 있어 공동창작을 통해 ‘4·3 진상규명’과 ‘제주개발의 현주소’를 집요하게 꼬집어 왔다.

또 ‘사월굿 한라산'(89년) ‘백조일손'(90년) ‘헛묘', ‘개발바람 오름너머'(91년) 등은 공동창작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김수열·정공철·김경훈·장윤식·김석윤씨 등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91년 9월 특별법 저지를 위한 연합공연 ‘새날을 향하여’에는 극·풍물·춤·미술·노래·영상 등 도내 14개 문화단체들이 대거 공동참여, 집체극으로서의 결집된 면모를 한껏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미술부문에 있어서는 흔히 걸개그림 및 ‘포토꼴라쥐’ 제작과정을 통해 쉽게 접근해 볼수 있다.

걸개그림이 제주에 처음 등장한 것은 87년 새한병원 노조 투쟁당시 병원로비에 걸려있던 폭 6m·길이 4m크기의 ‘해방의 함성으로’라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하는 인원은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 3~4명에서 많게는 10여명까지 뛰어든다. 이 시기에 제작된 걸개그림 가운데 가장 큰 작품은 90년 8월 미술패 ‘보롬코지’가 제작한 폭 25m·길이 20m 크기의 ‘노동해방의 그날까지’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패 ‘보롬코지’는 특히 영상패 ‘움직거리’와 연대, ‘포토꼴라쥐’작품에 손을 댄다. ‘보롬코지’는 이를 통해 미술의 기능이 단순히 장식적·교육적 기능에서 벗어나 사회적 발언이나 힘으로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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