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는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의 드라마 그 자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역대전적 4무 10패.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40위 한국의 월드컵 4강진출은 그래서 불후의 명작일 수밖에 없다.

한국 대표팀이 숨가쁘게 달려왔던 여정의 매 경기에선 ‘영웅’들이 탄생했다. 포르투갈전의 박지성이 그렇고, 이탈리아전의 설기현·안정환이 그렇다. 무적함대 스페인을 침몰시킨 영웅은 멋진 골을 터뜨린 스트라이커가 아닌 골키퍼 이운재였다.

특히 홍명보-최진철-김태영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스리백 라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한국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호들을 격파하며 월드컵 4강에 올라간 것은 투혼으로 똘똘 뭉쳐 철옹성을 구축한 수비라인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이 가운데 최진철(32·전북 현대)은 히딩크호가 캐낸 진주중 가장 값지다. 오른쪽 사이드 백을 맡은 그는 187㎝·80㎏의 당당한 체격을 바탕으로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며 수비라인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외국기자들은 “수비위치를 확보하는 데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고 감탄했다.

그가 보여준 불같은 투혼 또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전에서는 힘좋은 비에리를 종료휘슬이 울릴 때까지 밀착 마크했다. 117분 동안 이탈리아의 공격을 막아내며 2-1 역전승을 견인했다. 그러나 그는 경기직후 탈진해 병원에 실려갔다. 링거를 맞고 숨을 돌린 그는 “이렇게 힘들었던 경기는 난생 처음이다. 죽는 줄만 알았다”고 털어놨다.    

누구나 인생에 3번의 기회는 온다고 했던가. 최진철은 이번 월드컵을 누구보다 갈망했다. 숭실대 4학년 당시 남들보다  일찍 달았던 태극마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을 두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바로 눈앞에서 모두 좌절됐기 때문이다.

94년 미국 월드컵때는 전지훈련까지 갔었으나, 발목부상 때문에 쓴맛을 봐야 했다.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98년에는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종료 3분전에 교체 투입된 후 경쟁에서 밀려나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게다가 최진철은 작년 9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윤희준과 박지성이 다치는 바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점에서 슬픈 과거를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까”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더이상 들러리는 없다. 무조건 태극마크를 달아야 한다”는 생각에 훈련에 매달렸다. 히딩크 감독도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늦깎이 수비수 최진철의 진가는 폴란드전에서 드러난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공식 홈페이지(www.uefa.com)을 통해 최진철에 대해 “한국 대표팀의 기념비적 수비수”라고 극찬했다. 20년 넘게 월드컵을  재해온 축구평론가 앤두르 워쇼는 “폴란드전때 최진철이 올리사데베를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면 이번 월드컵이 어떻게 전개 됐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철이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최진철은 “당시 축구를 하던 형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고 했다. 최진철은 3살 위의 형 진석씨를 따라 육상 유니폼 대신 축구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어 4살 아래의 동생 진오씨마저 형들을 따라 축구선수가 됐다.

3형제가 축구 유니폼을 입었으니 축구가족인 셈. 큰 형은 부상으로 일찍 축구선수 생활을 접었지만 동생은 실업선수 생활까지 했다. 동생은 여전히 힘이 닿는 한 계속 축구를 할 것이라고 한다.

최진철은 축구를 하기 이전에는 육상을 했다. 단거리 선수였다. 지금도 100m를 12초3에 끊을 정도로 키와 체중에 비해  빠른 발을 가졌다. 현재 최진철 부모가 살고있는 제주시 용담3동 집에는 당시 육상대회에 나가 따낸 트로피와 메달이 많다.

최진철은 제주서교와 제주중앙중·오현고를 거쳐 숭실대에 진학했다. 187㎝·80㎏의 최진철은 고교선수 때까지 빠른 발과 발군의 헤딩력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다.

수비수로 전환한 것은 숭실대 선수시절. 팀에서 스토퍼로 활약하며 간혹 공격에 가담하며 중거리 슛을 날리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제공권 장악의 투사’로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공격 최선봉에 서본 경험이 있기 때문. 상대  공격수들의 심리를 먼저 읽고 철저히 봉쇄 할 수 있을 만큼 위치선정이 뛰어났다.

최진철은 97년 전북 현대구단에 입단했다. 당시 상무에 속해있던 최진철은 전북에 1순위로, 대학대표로 활약했던 제주일고 출신의 윤재훈은 울산에 1순위로 낙점 돼 눈길을 모았었다.

당시 최진철의 계약금은 1억5000만원의 특급대우였다. 최진철은 전북구단에 입단, 한때 공격수로 활약했다. 두 시즌 동안  17골을 넣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도 그의 일차적인 임무는 공격저지지만,  코너킥을 할 때에는 어김없이 상대 골문 앞에 섰다. 태극전사 가운데 가장 키가 커 헤딩슛을 날리기 위해 공격수로 변신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그의 공격 가담은 상대 수비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데 충분했다.

최진철은 월드컵 개최도시에 연고를 둔 프로축구 구단 창단 움직임에 대해 “월드컵을 계기로 달아오른 축구열기를 확산시키는 데 더 없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은퇴 전에 제주에 연고를 둔 구단이 창단되면 고향에 와서 선수생활을 마무리짓고 싶다”고 말했다.

◆최진철 프로필
 △생년월일=1971년 3월 16일
 △출생지=제주
 △체격=187cm·80㎏
 △가족관계=부인 신정인씨와 1남1녀
 △출신교·소속팀=제주서초등학교-제주중앙중-오현고-숭실대-전북 현대
 △A매치 데뷔=97년 8월 친선경기 브라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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