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열 씨.
'2009년 9월 7일'행정공무원 수습 시작일.
그냥 스쳐지나는 날짜임에도 불구하고 이 날짜는 앞으로 매우 소중할 것 같은 예감이다. 나에게 공직생활이라는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비상은 성산읍사무소!

수습생활이 시작된 첫 2주일,
직원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내게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할 만큼 감당하기 힘든 시련기였다. 첫 시련은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 내가 반응을 못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내 앞의 전화기에서 벨소리만 울려도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고, “감사합니다. 성산읍 사무소 이진열입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버벅대기 일쑤였다. 전화가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두 번째의 시련은 우리부서를 방문하시는 민원인들에 대한 나의 어정쩡함이었다. 민원인이 오시면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 말만 하면 되는데 이조차 어려워 입으로만 중얼중얼 대다 계장님께 혼났던 기억도 있다.

9월은 감귤 열매솎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공무원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사무만 보는 줄 알았지?” 밭에 나와서 이런 일 할 줄 몰랐지??”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각오했기에 직원들이 우려하는 ‘내가 이런 일 하려고 2년 반 동안 공부에 매진했었나’라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또 9월은 재산세가 부과되는 달이었기 때문에 업무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정신없이 흘러간 한 달이었다. 처음엔 민원인이 “세금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요?” 라는 물음에도 어쩔 줄 몰라 다른 직원에게 연결하고,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서 민원인에게 혼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직원들이 상담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직접 상담도 몇 번 해보니 아는 것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능숙하게 대처하는 요령도 알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뿌듯해 했었던 것 같다.

10월, 신규임용자 교육이 있었다. 가장 큰 기쁨은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나의 벗, 나의 동기들을 알게 된 것이고, 선배 공무원들에게 좋은 말씀과 실무에 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11월, 교육 후 맡은 업무는 체납액 납부독려와 과오납금 환급을 위해 납세자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돈을 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기에 납세자들 반응도 다르다. 환급 해주는 것은 주민들이 더 낸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것뿐인데 나에게 고맙다고 할 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독려 전화를 할 땐 납기내 납부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분, ‘세금 못 내겠다’며 화내시는 분, 세금과는 관련없는 일로 하소연 하시는 분등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처음엔 그런 반응에 어리둥절하고, 속상해 하고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라는 생각도 했지만,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니 당장 재정상 부담이 되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금은 왜 납부해야 하며, 납부한 세금으로 어떤 혜택과 편의를 누리고 있는지 등에 대해 잘 이해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습생활 3개월차인 지금, 난 벌써부터 공직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듯 하다. 커다란 윤곽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 항상 배우는 것에 소홀히 하지 않으며 생활해야겠다. 오랜 가뭄으로 척박해진 땅 위에서 멋들어진 꽃 한송이를 피울 수 있도록 계속 물을 주어야 겠다. <이진열.서귀포시 성산읍사무소 수습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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