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멘트+자갈+물= 콘크리트. 회색빛 콘크리트는 자연과 대비되는 인공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은 콘크리트에서 편의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삭막한 구조물 때문에 우리는 소통(疏通)을 잃고 있습니다. 성장이란 목표를 향해 화려하고 세련되고 비움보다 채움에 매료돼온 결과 훼손되지 않은 원시의 자연을 잃어버렸습니다.

▲ 1999년 구좌읍 행원리지역 해안도로 개설 과정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제주의 포구도 그중 하나입니다. 최근 제주녹색연구소(소장 장성철)에서 주관한 제주포구기행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992~1993년께 일간지에 '제주의 포구'를 연재했던 게 인연이 돼 길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모습과 크게 달랐습니다. 10년새 거의 모든 포구가 원형이 깨졌습니다.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 어민들의 생명력 넘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개발바람을 타고 해안도로가 개설됐고 원시어로시설물인 원담과 풍어를 기원하던 갯당이 잇달아 '불도저'행정에 허물어졌습니다.

옛 등대인 도대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용담2동 다끄내 포구의 도대불입니다. 방파제 확장공사를 하면서 허물어 버린 것이지요. 도대불은 남포불이냐, 전깃불이냐, 그 동력원만 달랐을 뿐, 어민들의 애환이 밴 어로문화유적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제주의 도대불은 미학적인 측면이나 석축방법 등을 놓고 볼 때 좀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더욱이 도내 130여개의 항·포구는 모두가 획일적으로 시멘트를 발라 놨습니다.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 자체가 큰 관광자원인데도 말입니다. 어선 세(勢)가 커지면서 쓰임새를 잃은 포구에 대해서도 주민 숙원사업이라며 확장공사를 했습니다. 수심이 낮다고 매년 준설작업을 했고, 방파제는 계속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나 한계입니다. 제주의 옛 어선인 '테우'를 부리던 시절에 축조된 포구를, 돈을 쏟아 붓는다고해서 크게 달라질까요?

포구기행 도중 육지에서 온 한 참가자는 "바닷가, 포구에 가보니 시멘트로 된 바다와 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크든, 작든 모두가 개발대상이었습니다. 너무나 획일적이었습니다.

▲ 애월읍 한담동 산책로

제주의 선민들에게 바다는 비옥한 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밭은 결코 땅에만 있는 게 아니었지요. 예로부터 갈아먹을 땅이 척박했기에 바다에 생존을 의지해야 했던 제주 선민들은 마을마다 포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천연적인 포구는 드물고 대부분 사람들이 직접 돌을 날라 축조한 것입니다. 돌덩이 하나를 쌓더라도 그저 아무렇게나 쌓지 않았습니다. 드센 바람과 파도와 맞서기 위해 '여''코지'지형물을 교묘히 이용해 쌓은 것이지요.

숭숭 구멍이난 화산석은 제주 사람들의 땀방울로 얼룩졌고,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하는 숙명적인 생활이 함께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숱한 세월동안 깎이고 깍여 있는 돌덩이를 있는 그대로 들어다가 몇 겹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진 제주의 포구는 제주사람들의 삶 그 자체요, 역사의 시원(始原)이었습니다.

제주시 용담2동에 자리잡은 '다끈개'는 사람들이 갯가의 돌을 일일이 정으로 손질해 포구를 축조했다 해서 '닦은개'입니다. 제주시 외도동의 '너븐여개'와 북제준군 애월읍 곽지리의 경우에는 주변 지세가 '선형(船形)' 또는 '주형(舟形)'이어서 고기잡이가 숙명인 것처럼 받아 들여졌습니다.

제주의 포구들은 이처럼 나름대로 작은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제주 선인들의 삶의 역사가 응축된 구체적인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 제주시 용담해안도로에 위치한 다끄내 포구의 옛 모습과 현재.

해안도로는 어떻습니까? 잠수들이 언 몸을 녹이던 불턱,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 돌담들이 허물어져 갔습니다. 애월읍 구엄리 속칭 ‘산바달’은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던 이곳도 해안도로 개설과정에서 거대한 암석으로 바닷가를 매립함으로써 먹돌과 조간대가 사라지는 등 옛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바닷가의 돌은 바다생물의 모태입니다. 바다에 돌이 없으면 해조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어족들은 어족대로 몸을 숨길 거처를 잃게 됩니다. 매년 투석사업을 하지는 못할망정, 그 귀한 돌을 캐낸다는 것은 마을 공동재산을 축내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집안의 흥망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애월읍 동귀리 묵은텟개.
그러나 누대로 애써 가꿔 온 이 생업의 터전은 해안도로 개설과 함께 각종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상공에서 비양도와 우도를 찍은 사진을 봤습니다. 해안을 따라 시멘트도로와 아스팔트 도로가 흰띠를 두르고 있더군요. 그 길을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주민숙원사업이라고요?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요. 과연 관광객들이 쭉 뻗은 도로를 달리고 싶겠습니까? 숭숭 구멍이 난 돌 길을 걷고 싶어 하겠습니까? 주민들도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차별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 한림읍 귀덕1리 앞개.
콘크리트는 현대인의 소외를 표현하는 아이콘입니다. 옛 포구의 정취가 듬뿍 밴 포구를 만나고 싶습니다. 보존과 개발은 대립적인 게 아닙니다. 제주의 선민들의 흔적이 밴 어로문화유적은 과거의 산물이지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초월해 우리 역사문화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문화정책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포구로서 기능을 상실한 포구에 대해서는 옛 포구로 복원해 교육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곳에 갯당과 갯담, 도대불도 함께 갖추면 더욱 좋겠지요. 사람이 만드는 풍경이지만 이미 자연속에 녹아서 동화돼버린 또다른 자연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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