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식 틀밭이 나를 농민이 되게 하였다. 거기 더해 틀밭에 걸터앉아 작업하는 나이 많은 농부의 사진은 ‘이거다’ 확신이 들게 했다. 지금은 틀밭 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재배 농민으로 지내온 몇 년 동안 두둑(밭 고랑)을 어찌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없이 고민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고 있다. 처음에는 파종하기만을 반복하다 보니 파종한 곳에 또 파종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풀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관계로 조그맣게 심고 또 심고를 반복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줄을 치고 파종한 곳과 파종하지 않은 곳을 구분할 줄 알았고,
비 오는 소리가 제법 주룩주룩 들린다.어릴 적시인을 흉내 내던 언니 곁에서 눈동냥으로 봤던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란 시가 있었다제목이었는지 내용 중 이야기인지 지금은 가늠조차 어렵지만50년쯤 살아오면서 뇌리 한쪽의 화두이기는 했었다.너무도 오랜만의 비 예보에난 어제부터 살짝 들떠 있었다.마당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수박 모종은대지의 기운을 어서 느끼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는데너무나도 길게 이어진 맑은 날씨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아니 가뭄을어제도 토종고추인 울릉초 모종을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심긴 했지만수박을 심을 밭은 경운을
무경운(밭을 갈지 않는 것;편집자) 5년 차인 밭이 있으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져 잎채소를 심어보자 맘 먹고 10월 중순경 모종을 내고 밭으로 옮겨 심었다. 직파를 고집하다가 상추 직파를 몇 년째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라 모종 내고 옮기기로 했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고 검색을 해 보니 상추는 연중재배가 가능하다 했다. 한여름 무더위 파종을 제외하면 언제든 씨앗을 뿌리면 재배가 가능하단 이야기다. 하지만 상추는 10월 중순경에 씨를 뿌려야 오랜 기간 맛있는 상추를 수확할 수 있다. 너무 이르게 8월쯤 파종하면
몇 년전 농민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자연재배 농민이 되기로하였다. 사실 그전에는 농민이 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일부러 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연재배를 접하고 ‘이런 농사라면 해볼만하다’고 생각했고 농민이 되기로 하였다. 살고 있는 곳에서 꽤 거리가 있었지만 밭을 얻을 수 있었고 오전에는 밭을 일구는 재미에 빠져 매일같이 그 먼 길을 다녔다. 여성농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 회원이 되었고, 회원들이 진행하는 토종종자 증식포 사업에도 참여하여 나름 더 재미있었고 자부심도 있었다. 자연
전업농이 아니었던 몇 해 전 내리 심기만 하고 거두어들이는 것은 거의 없었다. 씨앗을 들고 밭에 가는 것도 룰루랄라 콧노래 나오는 일이고 밭에 가 앉으면 세상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이 있었다.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씨앗을 심고 또 심었다. 가끔씩은 완두콩이 심어져 자라고 있는 곳에 쪽파를 심기도 하곤 했지만 조그맣게 밭을 정리하고 씨앗을 심고 씨앗이 잘 자라주길 기도하는 마음이란. 그렇게 3년이 지났을까? 아직도 심는 것에 비해 거두어들이는 것은 미미했고
1300평 농사지어 40kg포대 3개 수확,1000평남짓에 2포대 수확,500평 남짓에 2포대 수확.올 한해 메밀농사 지은 3명의 여성농민 농가의 수확량이다. 밥 빌어당 죽도 못쑤어 먹겠단 소리는 이럴 때 하는 말일까? 올해 그리 염원하던 메밀농사를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성공이라 하기엔 너무 열악하지만 그래도 작년 태풍에 파종하자마자 포기하고 갈아엎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이래서 메밀은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확량이 늘지 않는 건지 모를 일이다. 한 언니는 그나마도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저녁 8시. 여성농민회 사무실.하루종일 종종거리며 밭에서 일을 고되게 하고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모였다. 오늘은 공부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 주제는 식량주권이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만 진행하면 되니 다큐 하나 보고 감상을 잠깐씩 나누면 된다. 준비를 해두고 간단히 간식거리를 챙기는데 벌써 언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힘들고 지쳐 쓰러질 듯하다가도 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차게 수다 삼매경이다.우리지회 막내이자 초보 엄마이면서 초보농민이면서 초보 제주도민은 상큼하게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타나 주셨다.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벅찬
올해로 콩농사를 지은 지 9년차이다. 첫 3년은 콩농사가 제일 쉽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3년은 콩농사 욕심 좀 내 볼까? 생각했고 최근 3년은 거의 모든 콩농사를 말아먹고 수확을 포기했다. 지금은 콩농사는 절대로 다시 하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조그만 텃밭에다 쪽파나부랭이를 심다가 밭다운 밭을 얻어 콩농사를 처음 지은 해. 영롱하게 빛나던 콩알들을 보며 무얼할까를 얼마나 고민했던지…. 수많은 콩알들을 헤아려 보며 돈으로 바꾸는 셈을 해 보는 순간 얼마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팠덨지. 그 기억들이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올해로 당근농사 2년차. 작년에는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조그만 밭 하나를 겨우 파종했다. ‘언니네 텃밭(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장터;편집자)’ 유기농에 내려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파종했다지요. 모든 일이 처음인 우리는 당근보다 먼저 올라오는 풀들을 보고 기겁을 했었지요. 남편과 저는 당근밭을 바라보며 매일같이 으르렁 댔지요.남편은 풀밭을 보며 “갈아엎어야지. 당근밭이 되겠냐”고 신경질적으로 다그치고, 난 “해보지 않은 당근 농사에 적어도 제초제는 치지 말아야 언니네텃밭에라도 낼 수 있으니 그리해보자”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당근밭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잠을 잘 이룰 수 있어 더없이 좋다. 당근솎기에 바쁜 요즘 밭에서 일하기에는 여전히 땀을 많이 흘리게 되지만 잠자리에선 두툼한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며 행복한 미소를 나도 모르게 짓게 된다. 이런 날씨가 시작되면 보리차가 맛있어진다. 달콤한 봉지커피도 더 맛있어지고 작두콩차를 찾는 소비자도 하나 둘 늘어간다. 올해는 작두콩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했으니 이런 날을 즐길 다른 차를 더 준비해 두어야겠다. 작두콩만이 아니라 땅콩도 한 알을 건지지 못했으니 수확 철을 맞아 조금 억울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
몇 해 전 8월이었다. 해마다 8월이면 전국여성농민대회가 열리고 제주에서도 대거 여성농민회원이 상경하여 대회를 치러내는데 그 해 태풍이 여성농민대회 인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하였다. 제주도연합에서는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나를 포함하여 총 4명의 여성농민만이 상경하였다. 여성농민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나 북상 중이던 태풍이 대회를 마친 시간에 마침 제주 상공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내일은 중부지방으로 북상하여 내일도 비행기를 타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느긋하게 즐기다 가자고 합의를 본 상태였다. 하
올해 야심 차게 상추 농사를 지어봤다. 상추 농사라고 해 봐야 다른 상추 전문 농가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의 면적이라 어디 명함을 내밀기도 쑥스럽다. 오크상추, 청상추, 꽃상추 등 모종을 사서 심기도 하고 직접 모종을 내서 심기도 하면서 상추 재배의 재미를 느낄 때쯤 ‘내년에도 심으려면 씨앗을 받아볼까?’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자라고 있는 토종 상추를 잘 관리하여 씨앗을 받으면 내년에는 씨앗을 사지 않고 심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뿌듯해지고 있었다. 노란 꽃이 예쁘게 피었다. 이른 아침 해가 쨍하고 뜨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수박이 한 덩이 사고 싶어진다. 마트나 생협매장에는 벌써 커다란 달덩이 같은 수박이 많이 나와 있다. 커다란 수박을 냉장고에 두었다 시원하게 먹으면 더위도 가시고 무엇보다도 힘이 불끈 솟는 것 같아 종종 먹게 된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인데도 벌써 여러 덩이의 수박을 먹었다. 크고 달달하고 맛있는 수박을 말이다. 하우스에서 연중 재배가 가능하다고 하니 적당한 비용만 지불하면 우리는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맛있는 수박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종종 먹게 된다. 그러나 제주도 신엄수박은 아직 본격적인 출하가 되기
텃밭 농사를 시작하고서 좋아하게 된 작물이 있다. 전에는 먹지도 않던 옥수수를 꼭 심고 가꾸어 늦여름 간식으로 즐긴다. 질기고 질기기만 했던 옥수수가 농사를 시작하고서는 세상에 없는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한여름 작렬하는 태양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어 알알이 영글었으니, 따자마자 쪄내면 순식간에 서너 개를 먹어 치운다. 올해도 여전히 옥수수를 심었다. 빠른 곳은 곧 옥수수가 나올 만큼 자라있기도 하던데 우리 옥수수는 이제 막 세상 구경을 마치고 자리 잡았다. 곧 뜨거운 태양과 함께 폭풍성장하겠지?내가 키우
어제까지는 매우 더운 여름을 방불케 하더니 오늘은 세찬 바람과 함께 기온이 뚝! 마당 한 켠에 키우고 있는 단호박 모종이 걱정스럽다.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씨에 맨흙이 드러나게 심어진 씨앗은 얼마나 힘이 들까? 뭐라도 덮어주면 조금 나을 텐데…. 오늘도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밭으로 나선다. 무경운(논밭을 갈지 않는 것;편집자) 자연재배는 주로 직파(씨앗을 밭에 직접 파종)를 한다. 무경운이라 밭에는 항상 풀이 충분히 자라고 있고, 씨앗을 한 알 한 알 심으면서 베어내거나 뽑아낸 풀들로 그 자리에 고스란히 멀칭(mulching
작년 여름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회원들은 읍면 단위 지회별로 토종 씨앗 수집 조사활동을 벌였다. 무더웠고 무더웠던 8월 어느 날 오후 우리는 삼양동 해안마을을 찾았다. 시내이긴 해도 조그맣게 텃밭이 군데군데 보이자 우리는 토종 씨앗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콩을 심어 가꾸는 곳도 보이고, 호박넝쿨과 고구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을 보면서 텃밭을 가꾸는 삼촌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마시고 난 커피잔을 옆에 두고 담소를 나누시는 삼촌들 무리를 만나 오래도록 심고 가꿔온 씨앗들이 있는지 여쭙자 ‘이제는 다 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