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산다고 해서 를 쓰다 보니 필자의 고향 삼양이 지금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다. 제주도 국회의원 3석을 지키기 위해 제주도지사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및 각 단체들이 피나는 노력 끝에 사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주도민으로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그런데 선거구 재조정으로 인해 삼양동이 행정상 전혀 관계없는 북제주군으로 편입
식료품의 위생, 방역 관리가 가장 엄격하고 까다로운 일본에서 조류 독감(일본에서는 “도리 인플엔자”라고 함) 발생으로 그 헛점을 드러냈다.지난 2월26일 쿄오토후에 닭의 대량으로 죽고 있다는 익명의 전화가 있었다. 쿄오토후에서는 즉각 강제 검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으로 판명 됐다.그런데 그 양계장에서는 2월20일부터 매일 보통 때의 10배인 1000마리가 죽
9년 전 일본만이 아니고 전 세계에 충격을 준 판결 공판이 2월27일 토오쿄 지방재판소에서 있었다.옴 진리교 (현재 “아레후”로 개칭) 교조였던 피고 아사하라 쇼코오(본명 마쓰모토 지쓰오)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재판은 일반방청객 38석에 방청 희망자 4658명이 살도하여 123배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으로 인한 일본 여론은 북한에 대해서 라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지난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과 일본 외무성 고관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인 강석주 제일 외무차관(김정일, 코이즈미 회담시 김정일 위원장 바로 옆에 앉음&g
이 기사는 지난 1월20일 요미우리 신문에 실렸던 기사다. "17년 전에 시드니 골동품 가게에서 산 일본군 군도(軍刀)가 있다. 나도 늙었기 때문에 처음 갖고 있던 주인이나 그 가족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전화가 요미우리 신문 시드니 지국에 있었다. 히라이 미치코(平甘 道子)특파원은 전화한 사람과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중 퍼푸뉴기니아에서 호주군과 일본군과
지난 2월1일 오오사카후 지사 선거에서 오오타 후사애(52) 현직 여성지사가 압도적인 차이로 재선됐다. 선거 고지 당시만 하더라고 치열한 3파전이 예상됐다. 참의원을 그만두고 출마한 프로 야구출신인 에모토 다케노리(56) 후보와 공산당 추천으로 나온 우메다 쇼오지(53) 변호사(그외 2명)가 출마해서 현직 지사와 대결했다. 그러나 결과는 유권자수 약 692
지난 15일 오오사카후 지사선거가 고지되어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작년 11월말까지만 해도 무풍지대로 현직인 오오타 후사애(太田 房江)지사의 재선을 모두가 의심치 않았었다 . 그녀는 통산성 관료출신으로서 일본의 첫 여성지사로서 자신도 재선을 굳게 믿고, 스스로가 정당추천을 거부한다고 선언했었다. 어느 정당의 추천도 안 받아서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1월12일 날은 일본의 이었다. 1월12일이라고 날짜가 분명히 정해진 것이 아니고 매년 1월달 두 번째 월요일이 이다. 몇 년전까지는 1월15일로 정해져 있었으나, 그날이 화요일부터 금요일사이에 끼는 해에는 연휴성이 없어서 며칠 일하다 쉬고 다시 일하는 비능률적이어서 이렇게 월요일 날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 새
지난 해는 조총련 동포 수난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재작년 일본인 납치 가족들의 귀국과 함께 북한에 남은 그 가족들의 귀국 문제로 인하여 북한과 일본 정부 사이에 해결의 실마리는 커녕 서로 비난 성명으로 일년이 지났다. 이 영향으로 일부 일본인 우익 단체들은 조총련 기관에 폭탄 장치와 총격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또 조총련 학교 동포 학생들에 대한
지난해 11월 관광지로 유명하면서도 보수적인 지역으로 잘 알려진 나라켕에서 한국어 웅변대회가 열렸다. 주최로 대상은 한국어를 배우는 재일동포와 일본인 기타 외국인이었다. 동포 3명, 일본인 7명, 총10명의 참가자 중 최우수상을 받은 이케다 쓰비오씨의 라는 원
연말연시를 맞이하면 일본에서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귀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속에서 빚어지는 교통기관의 과잉 승차율과 역류현상은 연어가 강과 내를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회귀본능을 연상케 한다. 전형적인 농경사회였던 일본인의 귀향의식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어려웠던 유년 시절들까지 세월의 잔상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되면서 어느 사인가 고향은 모두
언어란 시대와 함께 변하는 생물체이다.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간에 시대와 더불어 공존하면서 그 시대를 대변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60년대 제주도가 관광 산업을 주산업으로 육성 시킬 때 구호처럼 내건 캐치 프레이즈가 였다. 그 당시만 해도 제주도민의 대부분은 하와이에 대한 동경속에 명문구(?)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