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삼밭구석과 범미왓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을 제막했다. ⓒ 김효영 기자
“그때 생각만 하믄 지금도 겁나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어수다”

토벌대가 동광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그 죽은 시신들을 수습하기가 무서워 사람들은 피했다. 배고픈 돼지가 사람들의 시신을 뜯어 먹었다. 그 돼지를 군인이 와서 잡아갔다. 돼지를 잡아먹은 군인들이 다시 토벌을 와 사람을 죽였다.

4.3의 광풍은 중산간 동광마을에도 휘몰아쳤다. 삼을 재배하던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된 동광리 하동, '삼밭구석'. 평화로웠던 마을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모두 불타 없어졌고 밭 구석 곳곳에서 자라는 대나무들이 삼밭구석 옛터임을 알려 줄 뿐이다.

삼밭구석은 4.3 당시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어 폐허가 돼 버린 ‘잃어버린 마을’이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위원장 김태환 도지사)는 8일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삼밭구석'과 북제주군 애월읍 유수암리 '범미왓'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을 제막했다.

마을주민과 유족들은 이날 4.3원혼들을 불러 모아 추모제와 참배분향을 했다. 이어 놀이패 '한라산'의 '헛묘'공연을 통해 다시는 제주땅에 피맺힌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고, 이같은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바랬다.

# 넝쿨 뒤덮인 채 아픈 역사 '빼곡'

▲ 김원유 할머니. ⓒ 김효영 기자
4.3사건희생자유족회 김두연 회장은 “잃어버린 마을을 찾는 것과 함께 유해발굴 사업도 추진중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국고지원을 받아내 2군데 정도의 4.3 유적지를 보존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 당시 상황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는 그들. 이제야 용기를 내고 입을 열었다.

4.3 피해 유족인 김원유씨(80,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는 “아이들 밥 먹이려고 부엌에 있는데 총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돌담에 숨었다. 토벌대는 동네사람들한테 멀리 도망가지 않으면 모두 죽인다고 엄포를 내렸다”며 “화순으로 도망갔고 여기저기 숨어다니는 생활을 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또 고안흥씨(85,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는 “48년 11월쯤 서광리에 소개령이 떨어진 직후부터 쉴새없이 토벌대가 드나들어 동광주민들을 수시로 죽였다”며 “지금 생각해도 무섭고 총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남편은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32살에 죽었다. 시체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바다에서 혼을 불러 들인 후 집안 비석에 이름 석자만 새겼다. 지금도 그 슬픔을 잊을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안흥 할머니. ⓒ 김효영 기자
초토화 작전으로 49년 1월 인근 큰넓궤에 은신했던 주민들은 토벌대에 의해 발각돼 영실 인근의 불레오름까지 피했다. 하지만 이곳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결국 토벌대에게 잡히거나 죽었다. 잡힌 사람들은 서귀포 단추공장에 수감됐다가 정방폭포에서 집단 총살을 당했다. 희생된 주민은 50여명.

현재 이 마을 입구에는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운 4.3 사건 위령비가 서 있다. 또 유족 일부는 희생자들을 위해 동광리에 헛묘를 만들었다. 현재 동광리는 동광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간장리만이 복구돼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위원장 제주도지사 김태환)는 4.3 당시 소개령 등에 의해 마을이 불에 타 없어진 이른바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내 표석을 세우는 사업을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해 현재 도내 20개 마을에 표석을 세웠다.

# 잃어버린 마을 북제주군 애월읍 유수암리 범미왓은?

범의 꼬리 끝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범미왓 혹은 호미동으로 불리는 마을. 4.3 사건 당시 이 마을은 가구수 약 19호에 70여명이 살았던 작은 마을이었다.

이국추씨(87, 북제주군 애월읍 유수암리)는 “새벽에 토벌대가 범미왓에 들이닥쳐 총을 쏘더니 집들을 방화하기 시작했다”며 48년 11월 16일 상황을 재현했다.

범미왓을 불태운 토벌대가 이웃 마을인 광령리로 이동하자 주민들은 불탄 자리에 움막을 짓고 거주하다 며칠 후인 21일 유수암리에 소개령이 내져지자 수산리, 하귀리, 신엄리, 이호리 등 각지로 떠났다.

그 이듬해인 49년 겨울에 유수암리 재건이 이뤄졌지만 범미왓은 재건 당시 성을 쌓을 때 성 밖에 위치하게 됐다. 범미왓은 현재까지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있다.

현재 마을에 있던 집터나 물방아터는 모두 과수원이나 농경지로 변해버려 옛 형태를 많이 잃어버렸다. 일부 마당과 집 울타리가 조금 남아 겨우 마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형편이다.

한편 유수암리 이 외에도 4.3 사건 당시 7~8호 정도의 가구가 살았던 ‘문주왓’ 이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이 곳 역시 48년 주민들이 소개한 후 돌아가지 않아 현재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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