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는 “조총련 문학 예술가 동맹 오사카지부 (약 “문예동”)동인지다. 필자가 이 동인지를 알게 된 것은 퍽 오래전이었으나 그 당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위대한 영도자”찬양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1년 9월 6일자 마이니치신문을 보고 필자도 이 동인지 맹원들과 작품 합평회를 갖게 되었다.

이 신문에<타향살이>라는 연재물을 재일동포 논픽션 작가 고찬유 씨가 한달에 두 번 씩 일요일에 재일동포를 취재해서 게재하고 있었다.

그 기사 속에 실린 동포가 시인 이방세 씨였다. 1949년생으로서 총련계 민족학교를 계속 다니고 조선대학에서는 문학부를 전공했다.

그의 시집 출판 기념기사 속에 우리말로 작품 합평회를 갖는다기에 출판사에 연락해서 이방세 씨께 편지를 냈다.

그는 “불씨”동인지를 주재하는 시인이었다.

“위대한 영도자를 일방적으로 아직도 찬양하는 작품 일색이라면 저는 이 모임을 사양하겠습니다.”

동인지 모임에 처음 참가했을 때의 필자의 인사였다.

“그 시대는 지났습니다.”

필자의 인사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까지 이 동인지 모임에 계속 참가하고 있다.

2년 전에 “불씨” 19호에는 필자의 졸품시 2편도 게재하였다.

그 작품집의 기념으로 2003년 9월 20일에 “노래와 시 낭송의 밤”이 오사카시에서 열렸다.

그 연습을 총련 민족학교에서 할 때였다. 필자도 자작시를 낭송하게 되었는데 사회자의 안내가 걸작이었다.

“다음은 남조선 작가 김길호 씨의 시낭송이 있겠습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남조선 작가라니! 사회자한테 한국 작가라고 소개해야 된다고 했더니 이방세 시인이 한마디가 또 깜짝 놀라게 했다.

“남조선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들은 한국이라는 호칭보다도 남조선 이라는 단어에 익숙했었다.

결국 필자의 의사대로 한국 작가라고 정정 했었지만 잊을 수 없는 편린들이다.

이번 가을에 “불씨”20호를 발간하는데 필자도 의무적으로 시를 써야 한다. 우리말과 일본어 작품을 게재하는데 일본에서 우리말 작품들이 동인지로서 나오게 된다는 사실은 과장된 표현을 한다면 경이롭다.

이러한 것이 하나의 인연이 돼서 필자도 이 동인지에 참가 하게 되었다.

이 동인지를 주재하는 문예동 여성 위원장으로부터,

“8월 19일날 제주도 「놀이패 한라산」이 오사카에 와서 워크숍을 갖는데 시간 있으면 처음부터 참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녁 때 교류회에 참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난 7월 합평회 때 들은 말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워크숍을 개최하는 회관에 문의했더니 지금 진행 중이란다.

필자는 이 원고를 제주에 보내고. 그리고 근무 마치고 난 뒤 고향에서 온 그들과 얘기 나눌까 한다.

그들은 4·3극 <고도의여명>을 오사카에서 공연한 “달오름”과의 교류로 왔으며, 그 대표 김민수씨를 학생시절 가르쳤던 선생님이 문예동 위원장이어서 필자에게 참가 요청이 있었다.

고향에서 오시는 「놀이패 한라산」을 만나는데 당구의 쓰리 쿠션처럼 돌고 돌아서 필자에게 전해졌다. 약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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