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순자씨가 23일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양태만들기 시연을 하고 있다.
“저 세상에 갈 때는 몸은 썩어도 좋으니 양태 했던 손은 두고 가거라.”

23일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갓일’ 시연을 하고 있던 중요무형문화재 장순자씨(65)가 작고하신 어머니의 유언을 털어놨다. 그의 어머니인 고(故) 고정생씨(97년 작고)는 지난 80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갓일’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의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고 떠나신 걸까.

#3대째 이어온 양태장의 고독한 삶

갓 만드는 일인 ‘갓일’에는 세 명의 장인이 필요하다. 갓의 테두리 부분을 만드는 ‘양태장’, 모자 부분을 만드는 ‘총모자장’, 양태와 총모자를 연결해 갓으로 완성하는 ‘입자장’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장 씨 집안은 3대째 ‘양태장’을 이어오고 있다. 100여년을 이어온 만큼 그 사연도 깊다.

196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사회가 산업화 되고, 전통 문화는 쇠퇴해갔다. 국가는 갓 만드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64년 통영의 모만환씨를 양태장 인간문화재로 지정했지만 그가 사망한 후 기술자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80년에 이르러 제주에서 양태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고정생씨를 인간문화재로 선정했다.

어린시절 인간문화재인 어머니를 도와가며 어깨너머로 양태를 배웠다. 그는 “23~31살까지는 대나무 장사를 했어요. 당시에는 주민들이 소일거리 삼아 양태를 만들었는데, 필요한 대나무를 대 주는 장사꾼이 없었거든요. 어머니의 부탁으로 시작한 일이 양태와 저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던 중 43살 때 어머니로부터 전수생으로 추천 받았다. 어머니에게 양태를 전수받는 내내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저는 지금도 어머니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작품을 만들 때 어머니가 만든 작품을 옆에 놓고 비교해가면서 만들어요. 만들다가 어려움에 부딪치면 마음속으로 어머니께 질문도 하고요. 어머니는 아직도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어요”라고 장 씨는 말했다.

▲ 양태만들기 과정. 속튼대 만들기-겉목하기-대오리과정-쌀 엮음-조를대 넣어 엮기-빚대꽂기-어교칠하기(왼쪽부터 한칸씩 옆으로)
# 장인의 세심한 손길로 태어난 ‘양태’

장 씨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 할만도 하다. 양태를 만드는 것은 그만큼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양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한계에 도전한다고 할 만큼 초정밀 기술이 필요하다. 인내심과 끈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인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야 하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인 셈이다.

특히 ‘빗대꽂기’는 끈질긴 집중력이 절정에 이른다. 사각형을 이룬 부분에 대각선을 긋듯이 비스듬히 끼우는 작업인데 전체적으로 빗대가 꽂힌 모양은 태극선처럼 타원형을 이룬다. 장 씨는 “빗대꽂기는 길이 아닌 곳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작업이예요. 저는 빗대꽂기 전에 항상 기도하고, 정직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죠. 반칙해서도 안되고요. 한번 실수하면 모양이 나오지 않거든요”라고 양태를 통해 삶을 배운다고 전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40여일이 걸린다. 장 씨는 보통 하루 작업시간이 6~8시간이다. 작업을 할 때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다. 한번 양태에 손을 붙이면 배고픈 줄도 모르고, 심지어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까지도 사라진다고 한다.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온 정성과 마음을 쏟아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 세계에 한국의 멋을 알릴 ‘갓 박물관’…“꿈은 이루어진다”

장 씨는 양태 만들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조상들이 즐겨 쓰던 소중한 전통의 갓의 명맥을 어떻게 든 이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의 두 딸을 전수생으로 등록시키고, 양태를 만드는 것을 배워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갓 박물관’을 통해 전수는 물론 세계에 갓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 꿈이다.

장 씨는 “‘갓’은 한국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에 바쁘다보니 전통을 잇는 것에 소홀한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작품들과 제가 이제껏 만든 작품, 그리고 다른 분들이 작품들을 모아 ‘갓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제주도에 올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상태고, 전시할 작품들도 더러 모았으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라며 꿈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랬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유언의 뜻 일거라고 했다. ‘양태 했던 손은 두고 가거라’는 말이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세상사람 들에게 남기고 가라는 말이라고. 그는 후세에 가르쳐 전승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 ‘갓일’을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지키고 있다. 그는 양태 속에 그의 삶을 묻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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