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중훈 시인이 시집 '작디작은 섬에서의 몽상'을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제1부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제2부 '섬이 되고 싶다', 제3부 '흐르다가 말라버린 빗물자국' 등 총3부로 63편의 시를 담고 있다.

강씨는 자서에서 '무게에 걸린 구름마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나의 계절 역시 아무데도 간 곳 없는, 잎이 지고 있는 내 유년의 자리에 당신의 솎아낸 가을햇살 하나 목을 맨다'고 밝혔다.

이 시집에서 과거는 미래로 이어지고, 다시 미래는 과거로 이어진다. 봄-여름-가을-겨울과 아침-점심-저녁-밤의 순환적 세계관이 있고, 희망과 생명력이 열리는 방식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벽에 걸려 있거나 걸려 있지 않은' 제목의 시는 기간의 변형된 이미지인 '달력'이 등장한다. 달력 속에는 장끼 한 마리가 갇혀있는데 이것은 화자의 분신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집에서 '너' 혹은 '그대' 혹은 '당신'이라는 시어는 화자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서 다양한 상징성을 띤다. 때로는 인격적 존재로도 제시되고, 때로는 초월적 존재로도 제시된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그 곳에 계시는 한'과 같은 시는 더 추상화되고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집에는 제주도에 대한 애착을 그려내는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다. 제주도의 풍경을 구체적인 삶의 고뇌와 회의를 담아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일본에서 태어나 네 살 되던 해 성산포 오조리에 돌아왔으나, 4.3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삼촌, 조부와 조모 등 온 가족이 학살당하는 현장에 있었고 어머니와 두 누이와 함께 목숨을 건진 이력은 그의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현재도 깊은 악몽으로 진행 중인 4.3을 시작으로 4.3을 진혼하고 해원하는 시편들이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작디작은 섬의 아픔은 그에게 크고 깊다.

강수 시인은 해설말미에서 "4.3을 소재로 한 이전의 시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에 비해 이 시집의 시들은 그러한 역사적, 객관적 사실로, 시적 사실로 상상적 진실로 전환하여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있다."고 밝혔다.

강씨는 1993년 '한겨레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오조리, 오조리, 땀꽃마을 오조리야', '가장 눈부시고도 아름다운 자유의지의 실천'이 있다.

다층 값 6,000원

남태평양, 그 작디작은 섬에서의 몽상 하나

(어느 날 나는 남태평양의 매우 작은 섬에 표류하는 꿈을 꾸었다 섬에서는 코코넛나무들이 또 다른 잠에서 꿈을 깨고 있었다 꿈에서 깬 섬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나는 갑자기 사랑이 마려웠다)

섬에는 언제나 끼처럼 불어대는 바람이 있다
바람기를 먹고 자란 나무들이 있다
나목(裸木)이고 싶어지는 끼가 있다
성숙한 나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한 점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섬의 열기는 바람이 스쳐간 뒤 더욱 심하다

만약 내안의 열기도 이 섬의 정열처럼 열렬하다면
입안가득 상큼한 코코넛 맛과 같은 것이라면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않고
그러면서 당당하고
넉넉하지 못한 것들도 때로는 넉넉해 보이는 섬 물살 같은 것이라면
나도 코코넛 나무숲에 숨어 내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홀로 떠다니는 코코넛 씨 같은 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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