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지구촌 제주-‘제주에서 살고 보니’」기획물은 동북아 허브를 꿈꾸는 제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눈에서 보고 느낀 제주의 단상들이다. 내·외국인 간 활발한 교류가 있으면 제주가 더 빨리 국제도시가 될 것이다. [편집자주]

벌써 한국생활이 7년째 접어들고 있는 로나 그레이스(25, 북제주군 애월읍 광령1리)는 제법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수다 떠는 그의 모습에는 한국 토종 아줌마의 모습이 그대로 베어났다. 두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그의 얼굴은 무척 밝아 보였다.

그는 열아홉 살 곱디 고은 나이에 필리핀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는 “남편이 필리핀에 관광을 왔었어요. 어떻게 인연이 되어서 만나다보니 결혼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한국 남자라 좀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것도 다 인연인데 맘을 굳게 먹고 한국으로 시집을 왔어요”라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오랜만에 야외 나들이를 나온 로나 그레이스와 그의 아이들.
# 필리핀→전라도→제주도 둥지 튼 철새에서 텃새 될래요

이어 그는 “남편은 전라도 사람이예요. 처음에는 전라도에서 생활했죠. 그러다가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 오게 됐어요. 오래전부터 제주도는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제주도행을 강행한거죠. 그렇게 해서 제주도에서 살게 된 게 벌써 4년째예요”라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에 둥지를 틀었다. 제주시와 떨어진 곳이라 교통이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제주생활에 만족스러움을 표현했다. 그는 5살 아들과, 4살 딸이 자연과 동화돼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줘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그가 제주생활에 정착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역경이 있었다. 그는 “처음에 제주도에 왔을 때는 솔직히 막막했어요. 필리핀에서 전라도로 이사와 겨우 적응하려던 차에 다시 제주도로 왔으니까요. 특히 농촌에서 살다보니 어른들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고생이 컸어요. 제주도는 또 다른 한국이었어요. 한국말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죠”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 낮에는 집안 살림, 밤에는 한글 공부 ‘주경야독’ 필리핀 엄마

거기에 두 아이 키우랴, 가정 살림하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낮에는 집안 살림에 육아를 도맡고 밤에는 조금씩 귀동냥으로 모은 사투리와 어려운 한국어휘들을 공부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에 빠졌다.

그는 “언어는 자신감이 중요해요. 책으로 아무리 공부해도 실전에서 사용하지 못하면 죽은 언어니까요. 저는 배운 것을 동네 아줌마나 남편 앞에서 항상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몸에 익숙해지죠. 또 아이들하고 같이 공부하면 더 재밌어요. 아이들과 사랑도 커지고요.”라고 설명했다.

# 필리핀 전통춤 반당구 “배워 보실래요?”

제주도내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많다. 그는 가끔 그들을 만나 고향생각을 덜어낸다. 아무리 가정생활에 만족하더라도 고향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향 부모님과 친지들, 친구들이 보고 싶은 날이 많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필리핀 여성들을 만나 수다를 떤다.

특히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필리핀 문화다. 그는 “한국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해요. 필리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국민들 대부분이 노래와 춤을 즐겨해요. 특히 필리핀 전통춤인 반당구는 인기죠. 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촛불이 들어있는 컵을 올려놓고 춤을 춰요. 마치 나비들이 너풀대는 모습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끔 외국인 행사가 있을 때 필리핀 여성 10여명이 함께 반당구를 추기도해요. 지난번 관광대학에서 외국인 행사가 있었는데 저희가 찬조 출연을 했죠. 연습하던 것과 리듬이 조금 틀려서 실수가 많아 속상했지만 필리핀 전통춤을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했죠. 반당구 한 번 배워보실래요”라며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필리핀에서 전라도, 이어 제주에 둥지를 틀게 된 로나 그레이스 가족은 이제 철새 생활을 접고, 제주에 정착할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서 제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들이 제주사람들과 어우를 수 있도록 제주사람들은 배려와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제자유도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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