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의 희망, 박지성. /뉴시스
'답답한 공격 플레이, 흐름을 바꿔줄 조커가 절실하다!'

충격의 패배였다. 평소 알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아니었다. 초조한 표정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껌 씹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2경기 무패행진을 거듭하며 고공비행을 거듭하던 맨유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것도 강등권을 맴돌며 챔피언십 추락의 위기에 직면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말이다.

맨유가 자랑했던 측면 공략은 물론, 중원 플레이까지 완벽히 봉쇄돼 흐름을 좀처럼 잡지 못했다. 아니, 상대 문전까지는 잘 이동했지만 마무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웨스트햄 골키퍼로 나선 그린의 신들린 듯한 방어가 워낙 뛰어나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이어진 맨유의 공세는 날카로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루니와 사하 최전방 투톱은 세기가 부족했고, 일찌감치 승부를 마무리짓기 위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20대 초반의 패기를 이기지 못하고 제풀에 꺾이는 모습이었다.

좌우 측면도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왼쪽 날개 라이언 긱스는 이날따라 몸이 유난히 무거웠고, C.호날두는 상대를 얕보는 듯한 인상이 다분했다.

굳이 볼을 끌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드리블을 하거나 곧바로 볼을 넘겨야 할 상황에 주저하고 홀로 해결하려다 이도저도 안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미드필더부터 전방에 올라서지 못하자 역습을 우려해 좌우 풀백 가브리엘 에인세나 개리 네빌의 오버래핑도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중원 플레이도 맥없기는 마찬가지. 마이클 캐릭과 폴 스콜스는 엇박자가 잦았다. 누가 전진하고, 누가 뒤로 빠지는지 플레잉 루트가 불분명했다.

결국 종료 15분여를 남기고 니젤 리오-코커에게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내줘 가뜩이나 갈길이 급한 맨유는 더욱 다급한 상황이 됐다.

유감스럽게도 퍼거슨 감독의 선수 교체 타이밍도 그리 좋지 않았다. 항상 웨스트햄의 신임 사령탑 앨런 커비쉴리 감독보다 한템포 느렸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이냐를 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어떤 선수를 교체하느냐에 초점을 둔 듯 했다.

선수 변화도 썩 위협을 주지는 못했다. 긱스 대신 투입한 솔샤에르는 왼쪽 측면을 담당하기에는 속도가 느렸다. 캐릭과 교체된 존 오셔의 경우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종료 2분여를 남기고 꺼내든 박지성 카드는 조금 느린 감이 있었다.

이같은 교체를 통해 전방에 사하-루니-솔샤에르가 올라서고, 그 뒤를 호날두와 스콜스 박지성이 받쳤지만 이번에는 존 오셔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았다. 수비도 아니고, 미드필더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셔닝.

그래도 박지성은 최후방부터 공격 최전선까지 부지런히 왼쪽 터치라인을 따라 움직이며 막바지 공격에 불을 붙였다.

만약 박지성 투입이 빨랐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솔샤에르-박지성 투입과 함께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한 호날두도 막판부터 안정을 되찾았기에 더욱 안타까운 승부였다.

결국 총체적 난국속에 맨유는 무릎을 꿇었고, 2위 첼시와 격차는 불과 승점 2로 좁혀졌다. 한경기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웨스트햄이 잘한 게 아니라 맨유가 못했다.

안될 때 분위기와 경기 흐름을 단숨에 뒤집어줄 조커가 필요했던, 그리고 그 해법이 박지성이라는 것을 보여줬던 웨스트햄과 일전이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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