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육아교육법을 실천하고 있는 삼도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환히 웃고 있다.(앞줄 왼쪽서 두번째 김정희 원장)
"옆집 애는 벌써 덧셈 뺄셈에 영어로 인사까지 한다는데…"

취학전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했을 고민이다.

조기교육 열풍속 젊은 부모들의 이같은 걱정이 커져가면서 영어나 글읽기를 가르치는 보육시설들이 많이 들어섰다.

하지만 제주시내 한 어린이집이 이같은 사회풍조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곳 교사들은 "자꾸만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지난 1월부터 새로운 육아교육법을 시도하고 있는 국공립 삼도어린이집이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 24일 오후 어린이집 담벼락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가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대여섯살 원아들은 놀이기구 사이로, 모래바닥을 차내며 몹시도 부산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따금씩 원아들의 이름을 불러 주위를 환기시킬 뿐 아이들의 놀이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같은 시간, 화사한 베이지색이 가득한 작은 방안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선생님이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었다.

"무슨 당근이 이리 안빠지지. 할멈 여기와서 좀 도와줘"

원아들은 선생님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은 인형들이 무척이나 신기한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 삼도어린이집 어린이들이 헝겊인형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 하고 있다.

이처럼 이곳 어린이집의 동화구연 시간이 아이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방안 가득한 조연배우들의 힘이 크다.

바로 이곳 선생님들이 한땀 한땀 손수 제작한 인형들이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인형을 제작하는 과정을 원아들이 지켜보면서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여느 장난감처럼 싫증이 난다고 집어던지거나 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바로 보여주고 감각으로 익히게 하는 산교육이다.

'발도르프 인형'이라 불리는 교구는 아이들의 장난감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인형속 솜부터 천연 염료를 이용해 물들인 것이나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순한 형태까지 새로운 육아이론이 녹아 있다.

최근 몇년새 국내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독일식 육아교육법인 발도르프 교육학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

20세기초 독일에서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정립된 이 교육학은 자연과의 교감과 그 안에서의 놀이교육을 강조한다. 때문에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상품화된 교구를 멀리 한다. 원형에 가까운 단순한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놀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독일에 있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덧셈의 원리를 가르치는 수학시간조차 손뼉치고 노래하는 놀이시간처럼 진행된다.

또한 모든 학생들이 천연직물로 만든 옷을 입고 장난감도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돌이나 나무 등이 사용된다. TV 시청 또한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금지다.

이처럼 학교 생활 전반이 자연과 가장 밀착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학생들 스스로가 느끼고 깨우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발도르프식 교육을 도입한 삼도어린이집에서는 또 하나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교육이 점심 나절이면 준비된다.

최대한 유기농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조리 과정에 원아들이 참여하는 것.

"가장 바람직한 보육시설은 집"이라고 말하는 김정희 원장(43)은 이 같은 시간이 아이들에게 서로 돕는 사회성은 물론 언어능력과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설탕이나 소금이 음식물에 섞여 녹는 과정 속에서 과학을 가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곳 원아들은 비가 오는 궂은 날 비옷을 입고서라도 밖으로 나가 놀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비오는 날 산책과 같은 바깥놀이를 통해 맑은 날과 다른 모습의 자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직접 만든 인형들을 설명하는 김정희 원장
이 뿐만 아니다. 이곳은 발도르프 교육법의 기본 정신을 살려 공부가 아닌 놀이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감성을 살려나가려 한다. 때문에 조기교육에도 부정적인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삼도어린이집이 예전부터 이러한 교육을 펼쳐온 것은 아니다.

불과 몇달전까지도 여느 어린이집처럼 영어나 한글수업 같은 교육 시간이 마련됐었다. 그림그리기의 경우도 교사가 주제를 정하면 따라 하는 인지수업이 주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대안교육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제주지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육아교육법을 찾게 됐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삼도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새로운 교육방법의 성과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능력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서서히 드러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작은 나무토막이며 헝겊인형 같은 놀이감들이 플라스틱 완제품의 자리를 대신해 나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좁은 틀안의 '양계닭'이 아닌 '토종닭'처럼 자유롭고 튼실하게 키워내려는 삼도어린이집의 변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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