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양은 백양더부살이와 비슷합니다. 보랏빛 꽃에 흰 줄무늬가 없다는 것이 다릅니다. 보랏빛 꽃잎을 열면 향기가 날까요?
바다가 훤히 보이는 오름에서든 밀림 같은 울창한 숲에서든, 은빛 지느러미 너울대는 억새들녘에서든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기생하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기생식물 중에서는 광합성도 하면서 기생하는 식물도 있지만 초종용이나 백양더부살이 또는 야고 등 같은 식물은 초록이 전혀 없는 희거나 갈색 빛이 납니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사철쑥 또는 개사철쑥에서 기생하는 초종용은 바닷가 근처 사철쑥이 자라는 오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혼자 힘으로 자라는 식물처럼 보이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사철쑥이 있습니다. 땅속에서는 사철쑥 뿌리에서 양분을 수탈하며 자랍니다. 그래서 초종용을 사철쑥더부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초종용은 갈색 줄기에 비늘 조각 같은 길쭉한 삼각형 잎 모양이 어긋나기로 달려 있으며 잔털이 빽빽이 나며 연한 보랏빛 꽃을 피웁니다.

언뜻 보아서는 백양더부살이와 비슷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꽃에 흰 줄무늬가 없다는 것이 다릅니다. 백양더부살이는 꽃에 흰 줄무늬가 새겨져 있어 하얀 점을 찍어 놓은 듯합니다. 초종용에게 양분을 내주는 사철쑥이 참으로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 보랏빛 초종용 외에 드물게 흰꽃을 피우는 초종용도 있습니다.초종용은 사철쑥 또는 인진쑥에 기생하는 식물입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식물도 있습니다. 다른 식물의 뿌리에서 또는 나뭇가지에서 더부살이하는 식물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얌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식물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식물은 그렇게 자신의 뿌리를 또는 자신의 줄기를 아무 말 없이 내줍니다. 그런 식물이 참으로 고맙기도 합니다.

그 고마운 식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식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식물들도 그렇게 약자를 위해 자신을 내주는데 나는 과연 어떤가?  생각해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에게 지팡이가 되어준 적이 있는가? 걸을 수 없는 자에게 발이 되어준 적이 있는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 고마운 식물보다 못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나의 신체를 소중히 아끼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등지고 떠날 때는 장기 기증하려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에게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드리고 싶습니다. 꺼져가는 생명에 한줄기 빛으로 밝혀 주고 싶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의 맥박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내가 듣는 것과 다름이 없겠지요. <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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