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동 삼성물산 건설부문 강서사업소. <노컷뉴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건설)이 수 천억원대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의 뒷조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이 주민은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삼성건설 간부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가정주부 A씨(45). A씨는 지난해 11월 소스라칠 내용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남자는 A씨에게 '9월에서 10월 사이에 모텔에 드나든 사실을 알고 있다'며 '리모델링을 계속 반대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A씨는 덜컥 겁이 났다. 지난해 1월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 공사 시공 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나눠진 조합원들끼리 폭행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계속 발생해왔기 때문. A씨는 곧장 인근 지구대로 신고를 하려고 달려갔다.

그러나 지구대 경찰관은 협박 내용이 녹취돼 있지 않아 고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A씨는 "평범한 주부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어떻게 녹음하냐"고 따져 물었지만 똑같은 대답만 돌아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또 한번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남성은 "사생활 조심해야 되겠더라. 유명 인사던데, 그러다 더 유명해지겠다"라며 더욱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A씨는 즉시 경찰에 고소했지만 걸려온 전화가 발신자 표시금지된 것이라는 이유로 전화를 건 협박범을 잡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팀과는 전혀 다른 팀의 수사과정에서 이 협박사건을 풀 의외의 단서가 발견됐다.

같은 경찰서 지능팀에서는 A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 공사 시공업체로 선정된 삼성건설이 추진대책위와 짜고 입찰을 따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삼성건설이 추진위 측에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하고 제반 경비 등을 대신 내주는 대신 추진위로부터 입찰 정보를 몰래 받아 입찰을 따냈다는 것.

경찰은 삼성건설 강서사업소를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A씨의 신용카드 명세서가 이 회사 중견 간부였던 B 과장의 책상에서 발견됐다.

이 명세서에는 협박전화에서 나온 모텔의 위치와 전화번호 등을 적은 메모도 있었다.

A씨는 "리모델링 건설사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했는데 B 과장 책상 서랍에서 내 신용카드 명세서가 나왔다는 얘기를 경찰로부터 들었다"면서 "카드 명세서를 가지고 사용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뒤 나를 협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모텔에서 신용카드를 쓴 건 내가 아니라 동생이며, 조카랑 같이 잘 때 쓴 것이기 때문에 회사측은 잘못 짚은 것"이라면서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여태까지 당한 게 억울해서라도 피해보상를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압수한 신용카드 명세서를 토대로 B 과장을 상대로 협박혐의를 추궁했지만 B 과장은 "그 명세서가 왜 자신의 책상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며 협박전화를 한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에따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삼성건설 강서사업부 B 과장에 대해 타인의 우편물을 빼돌려 개봉한 경우에 적용하는 '비밀침해죄'와 '입찰 방해' 혐의만을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 협박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은 "삼성건설 강서사업부 사무실에서 발견된 A씨의 신용카드 내역서와 A씨에게 수차례 걸려온 협박전화와 직접적으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기 때문에 검찰조사에서 삼성건설 임직원의 협박사실이 확인될 경우 회사측은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건설 측은 "B 과장의 혐의가 법적으로 확인된다면 회사에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본인이 부인하고 있는 데다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기는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번 의혹의 한 가운데 서 있는 B 과장은 지난 4월 '개인 사정'이라며 돌연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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