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방울새란
여름이 시작할 무렵이면 고귀한 난초와의 만남도 제법 많아집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납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려 가는 기분처럼 설레이며 만나고 와서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기까지 하니 큰일입니다.

조그만 늦으면 그 어여쁜 꽃은 시들어버리고 기다리려 주지 않지요.  장맛비에 어여쁜 꽃잎이 시들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혼자만이 안달이나고 사랑하는 이 앞으로 달려가는 마음, 이런 내 마음을 꽃은 전혀 알아주지 않습니다.

꽃은 오히려 나보다는 풀꽃 내음 가득한 풀향을 사랑할 것이고 꿀을 찾아 날아드는 벌과 나비를 사랑할 테지요. 언제면 이러한 짝사랑도 끝이 날런지 알 수 없습니다.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울새란 군락으로 있었던 자리에는 농사를 짓는다고 밭을 갈아 놓은 터라,  올해는 볼 수 없을 거라는 걱정이 앞섰는데 다행히도 작년에 눈맞춤을 해 두었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초여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처럼 어여쁘게 꽃을 피우니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 방울새란
꽃의 색깔이 방울새를 닮아서 '방울새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하네요. 방울새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방울새와 닮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꽃잎은 하얀 바탕에 연분홍 빛을 띠며  순판은 붉은빛이 띱니다.  방울새란은 큰방울새란에 비해 꽃잎 속을 들여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좀처럼 꽃잎을 열여 주지 않는 수줍음이 많은 꽃입니다.

큰방울새란은 방울새란에 비해 꽃도 크고 꽃잎 안쪽까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꽃잎 안쪽을 들어보면  방울을 입안에 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그마한 방울을 입안에 물고 있어 '방울새란'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큰방울새란을 처음 만난 것은  1700 고지 즈음에 있는  습지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난 기쁨에 왕개미들이 달려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엎드려서 담았습니다.

그 후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에 군락으로 피었더군요. 어찌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작년 이맘때 즈음 큰방울새란이 훼손되었지요.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많이 사라진 터라 올해는 볼 수 없을까 하는 조바심도 생겼습니다.

잎이 나오기 전부터  들락날락 거리면서 큰방울새란이 피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기다림은 마치 아주 오랜 기다림처럼 느껴졌습니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 하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하니 내 병은 아마도 지독한 불치병인가 봅니다.

짝사랑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  이제 와서 이렇게 지독한 짝사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 눈맞춤 하는 정도로 사랑을 하고 싶은데  만나면 기분 좋고 헤어지면 아쉬운 여운 속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데…,

내 마음을 구속하는 아름다운 것들이여, 그래도 그들과의 만남이 있어 행복하다고 속삭이고 싶습니다. <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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