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못 마시는 건 구보씨(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주인공과 동명이인)의 태생적 한계였다.

아버지가 그랬었고,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된 일인지 술 앞에서는 병든 병아리 마냥 맥을 못 춘다. 물론 나름대로 노력도 했었다. 그러나 한 잔만 들어가도 가슴이 뛰고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도저히 할 짓이 아니었다.

'안마시면 될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얘기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죽어다 깨어나도 모른다. 그건 더 할 짓이 아니다.

요전 회사 회식때 일이다. 초반에는 말도 통하고 다들 사람같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이라고 구보씨는 잘 알고 있다. 구보씨에게는 그나마 견딜만한 시간이다.

마침, 요새 잡음이 많은 정치인이 안주거리로 나왔다. 구보씨도 분통을 느끼던 상황이었기에 나름대로 열변을 토하며 술자리 분위기를 만끽했다.

근데, 조금 있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술 먹고 우기면 대책 없다'고 딱 그 짝이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통에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거다.

근데 이상한 점은 술 취한 사람들끼리는 말이 통하는 거다. 오히려 구보씨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하는 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2차에 가서는 아무도 말을 안 건다. 왜 따라왔나 후회하지만 구보씨의 오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그들만의 세상에서 구보씨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구보씨는 상상한다.

그 유명한 피천득 형님에게도 술은 태생적 한계였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평양에서 제일가는 기생집에서 더군다나 그 중에서도 제일미색을 자랑하던 기생이 따라주는 술 한 잔을 목 마셨단다. 그게 한이 되어 평생을 억울해 했단다. 구보씨는 '나 혼자만 술세상에서 외톨이가 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술 못 먹는 구보씨가 이 시대 주당들에게 할 말이 있단다.

"제발 같이 세상 살자, 그리고 이 세상에는 술 마시는 사람과 술 못 마시는 사람 두종류 밖에 없다는 그 요상한 이분법적 사고 좀 버려라. 니들이 술 취할 때 나는 세상에 취한다."<제주투데이>

<강정태 기자 /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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